성경 말씀은 행간에 숨긴 뜻이 더 중요하긴 하지만 표현된 문자 자체도 당연히 중요하다.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라는 생명을 가진 사람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삶은 생명 본성의 표현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먼저다. '거듭남'이란 말을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거듭나면 생명이 바뀌고, 바뀐 생명의 본성에서 비롯된 삶을 살게 된다. 그 삶의 형태가 바로 성경이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은 액면 그대로 남의 물건에 욕심을 내지 말라는 말씀이다. 생각해 볼 건 '소유'. 사람의 모든 건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사람은 거저 '맡은 자' 일뿐 자기가 소유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하셨다. 탐내지 말라고 한 이웃의 소유는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소유는 하나님이 주신 것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육신과 삶과 삶에 필요한 재화와 공급을 예비하시고 마치 사람의 소유처럼 주신 것은 사람에게 기대하시는바, 계획하시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웃의 소유는 하나님이 이웃에게 기대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맡기신 것이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게 있는데, 우리는 누구나 예외 없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맡겨진 게 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 육신의 삶이 핵심이다.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소유는 우리의 삶

 

이런 개념으로 볼 때 많이 알고 있는 달란트와 충성, 청지기 같은 말씀들이 여기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 위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웃에게 또 나에게 주신 소유에 대한 바른 생각이 필요하다.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이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가 이것일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낙심하여 물고기 잡는 본업으로 돌아간 제자들을 찾아가서 153마리의 고기를 잡도록 그물 던지는 방향을 말해주신 일이 있었다. 그리고 유명한 베드로와의 대화가 있는데, "내 양의 먹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지막에 베드로가 누구나 요한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두고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질문한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이 사람을 머물게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모두에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있다는 분명한 선언이다.

 

사람은 모두 셀 수 없이 다양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할 존재다. 사람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성품과 환경과 철학과 삶을 가진 이유다. 우리가 가진 남다른 것이나 공통적인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 안에 있다. 탐나는 이웃의 맡은 바가 있다면, 나에게도 맡기신 게 있고, 개인의 삶을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이웃의 소유보다 나에게 맡기신 것이 더 중요하다. 이웃의 소유를 탐할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달란트와 소유를 먼저, 귀중하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은 이 당연함에 관한 말씀이다.

 

이웃의 소유보다 나에게 맡기신 달란트가 중요

 

사람은 마땅히 이웃의 물건을 탐내는 게 옳지 않다. 욕심은 결국 죄와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웃이 가진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와 뜻, 목적을 위해 주신 것이다. 물질이나 환경 모두가 그 목적 아래 있다. 그러니 이웃과 남의 소유를 모두가 그렇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안다면 이웃의 모든 소유는 나에게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삶을 위해 주신 것이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소유를 맡기셨다. 이웃에게 무언가를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주신 하나님의 뜻에 집중해야 한다. 남의 소유를 보면 '나도 저런게 있다면 주를 위해 더 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나에게 주신 것을 감사함으로 여기고 인생을 주신 뜻대로 사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모든 계명을 지키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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