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은 하나님께 삶의 평안을 얻으려고 지키는 계명이 아니다. '십계명은 누가 지키는 계명인가?'가 중요하다.

 

시내산에 임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십계명을 전하신다. 사람들은 이 부분을 간과하지만, 십계명에 앞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와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어떤 관계인지를 설명하신 이유를 알 필요가 있다. 그건 십계명이 이스라엘 백성은 물론이고 오고 가는 모든 세대에서 어떤 사람을 위한 계명인지 설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애굽 땅, 곧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출 20:2)

 

애굽이 가진, 상징하는 의미는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해 왔다. 애굽은 오늘날 이집트라는 한 나라, 혹은 지명이 아니라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상징이다. 모든 사람이 가진 가치관, 곧 세상이 가진 가치를 인생의 가치와 의미로 알고 사는 삶이 애굽의 삶이다. 그런데 사람은 그런 종살이 같은 삶에 오히려 안식한다.

 

하나님의 견해가 그렇다. <종 되었던 집>에서의 삶이라고 말씀하신다. 집은 안식의 상징이다. 종 되었던 집이란, 종으로 사는 삶을 안식으로 여겼다는 말이다.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경쟁의 고단함에도 그것이 성취되어야 안식할 수 있다는 사람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모두가 인생은 고난이라고 한탄하면서도, 그 인생이 속한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를 어떻게든 좇아가고, 뒤처지지 않아야 평안을 느낀다. 이 알량한 평안을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하나님께서 <종된 집에서의 삶>이라고 정의한다.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서 떠나지 못하는 사람의 삶은 <종된 집에서의 삶> 즉 그 고단함에서 안식하는 삶이다

 

여호와는 그런 삶에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다.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고된 삶에서 인도하신 여호와를 따라나선 사람, 그런 사람이어야 여호와가 하나님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십계명은 그런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약속이다. 십계명 이전에 하나님과 관계가, 그 관계를 위한 하나님의 정체성 인식이 중요한 이유다. 십계명은 여호와가 하나님인 사람들의 계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유지한 채 하나님을 믿어 세상에서 성공하려는 사람과는 십계명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말렉의 본성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하나님을 조각하고 정의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십계명을 자기 계명으로 도용한다. 행동으로 지키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세상의 성공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를 부를 때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정체성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 곧 존재의 신이라는 걸 분명하게 밝히셨다. 사람이 행동으로 십계명을 준수한다고 반응하시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했다. 무엇보다 십계명은 존재의 거듭남 없이 행동으로 지킬 수 있는 계명이 아니다. 존재의 신 여호와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십계명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나를 어여삐 여겨 세상의 삶을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킬 수 있는 계명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존재의 신이지, 그런 행위를 의로 여겨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음욕을 품은 자는 이미 간음한 자', 형제를 '라가()라 하는 자는 이미 살인한 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적용하면 행동으로 십계명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십계명은 행동으로 지켜낼 수 있는 계명이 아니다.

 

그렇다면, 십계명이 행동으로 지킬 수 없고, 고단한 세상 가치에 안주하고 그 가치 세계에서 이긴 자가 되려는 사람에 무효한 계명이라면 누가 지켜야 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특히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라고 칭하셨다는 걸 주목해야 한다. ''는 나와 관계가 형성된 사람이란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십계명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계가 형성된 사람의 계명이지, 하나님을 하나님의 정체성과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과는 무관한 계명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하실 때와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여호와는 존재의 신이다. 그런 하나님과 '너와 나'의 관계가 형성된다는 건 하나님을 존재의 신으로, 그리고 나는 그로 인한 존재라는 인식과 고백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건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삶인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해 세상에서 잘사는 사람이 되겠다는 사람을 하나님이 ''로 부르시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삶이 되었기에 하나님과 '너와 나'의 관계가 형성된 사람을 한마디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 곧 창조 목적이 육신이 된 사람이다. 그러니까 십계명은 하나님의 마음을 안정시키거나 흡족케 하기 위해 지키는 계명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된 사람의 삶의 모습이라 함이 더 바른 설명이다. 늘 설명하듯 그저 살아갈 뿐인데 돌아보면 그 삶이 모두 성경을 지키고 있는 사람의 삶은 언제나 십계명을 준수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는 게 구원이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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