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2) 하나님을 만나려면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출애굽기 Date : 2023. 11. 24. 05:17 Writer : 김홍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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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에 시내 광야에 이르렀고, 그들 앞에 하나님께서 임하신다. 하나님은 시내산에 불꽃으로 임하셨고,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에 오르지 말고, 옷을 빨아 입고, 여인을 가까지 하지 말라고 하셨을 뿐 아니라, 이를 어기는 사람은 죽이되 손대지 말고 돌로 치거나 화살로 죽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흔히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가서 너무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으니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다고 알고 있기도 하다. 이는 예전 영화 <십계>의 영향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사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두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다. (20:1-24) 십계명은 다음에 하나씩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는 조건으로 말씀하신 명령들의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십계명과 율법을 말씀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임하신 하나님께서는 만나는 조건처럼 명하신 일들이 있다.

  • 처음 이틀간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며 기다리고
  • 셋째 날을 기다리며
  • 강림하는 시내산에 경계를 정하고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라.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하나님이 정한 때를 경건하게 기다리고,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

 

이것이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애굽에서의 삶에서 구해 주시길 간구한 일과 먹을 것, 마실 것 없다는 불평처럼 사람이 하나님께 요구하는 게 전부였는데, 비로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간략한 말씀을 잘 살피면 앞으로 정하는 모든 율법,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모든 말씀의 뼈대임을 알 수 있다.

 

1)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존재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건 다름아닌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다.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건 교리에 찌든 신앙인들도 알고 있다. 문제는 사람의 능동성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은 아주 능동적이다. 반면 하나님께서는 '기다리라', '경계를 지키라'라와 같이 수동적이길 바라신다. 이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지, 땅의 호소가 하늘을 움직이는 게 아니다. 땅은 하늘이 바뀌는 대로 순종한다. 하늘이 봄이 되면 땅에 꽃이 피고, 하늘에 비가 오면 사람이 우산을 쓴다.

 

하나님 말씀의 시작은 사람이 수동적이고 순종적이길 바라시는 것

 

하나님의 이런 생각을 확정하는 게 있다면 사무엘 선지자가 말씀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라는 말씀이다. 제사는 규례를 하나님이 만드시긴 했지만, 순종에 비하면 분명 능동적이다. 사울 왕도 제사의 기준대로, 시간을 지켜,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드렸지만, 그것보다 순종이 더 중요하다는 게 하나님의 생각이다.

 

수동적이고 순종하는 것엔 시간도 포함된다. 이루어져야 할 시점을 사람이 정하는 것도 능동적인 태도고, 하늘을 움직이려는 시도다. 성경 속 숫자 "3"은 하나님의 수라는 걸 대입해서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흘을 기다리고 하신 건, 내가 정한 때까지 기다리는 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고, 순종하는 것이며, 사람은 하나님 앞에 수동적인 존재라는 걸 분명히 인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 성결하고, 기다리라

그리고, 솔직히 사람으로선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때까지 사람은 경건하라는 게 하나님의 계명이다. 성결하고 옷을 빨라고 하셨다. 여기서 성결(聖潔)이란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것일 수 있다. 우선 성스럽다는 게 사람의 생각과 성경의 의미가 다르다. 거룩하다는 건 구분된다는 의미인데, 이는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며, 눈에 보이는 육신 그리고 세상을 본질로 아는 사람과 구분된다는 의미다. 당연히 높아지는 걸 은혜로 아는 사람과 구분되는 것을 포함한다.

 

성결하라는 건 세상의 가치를 가지지 않은 구분된 사람이 되라는 뜻

 

성결이란 바로 이런 존재가 되는 것이고, 그런 존재가 하나님 앞에 깨끗한 존재다. 따라서 하나님이 임하실 때까지 성결하라는 말씀은 세상 가치가 아닌 낮아지는 십자가를 진정한 가치로 아는 사람이 되는 깨끗함을 가지라는 뜻이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이 임하신다. 특히나 하나님의 시간은 크로노스(객관적 시간)가 아니라 카이로스(주관적, 상태적인 시간)라는 점에서 성결한 상태가 된 때가 하나님이 임하시는 때기에 더욱 그렇다.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로 나타났기에 하나님은 당연히 십자가의 의가 본성인 사람에게 임하신다. 자신과 의가 다른 사람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이 만든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다. 자기 자리 아닌 곳에 두면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세상과 구분된 사람이어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임하신다.

 

옷을 빤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사람의 일반적 관념으로도 경건하고, 성결한 자리라면 깨끗한 옷을 입는 게 상식이긴 하다. 주일 날 예배드리러 갈 때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으려는 마음이 그렇다. 그러나 그보다 좀 더 깊이 보면, 옷은 사람의 신분을 상징한다. 어떤 지위나 역할을 두고 옷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그런 지위는 세상의 가치에 의해 부여된다. 군인의 능력에 따라 계급이 정해지고 계급에 따라 옷이 달라진다.

 

옷을 빨라는 건 세상 가치로 부여된 형식을 모두 버리라는 말씀

 

그런 의미의 옷을 빨라는 건, 하나님께서 창조한 상태 이후에 세상 가치에 의해 부여된 자기 신분, 정체성, 자아를 가지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뜻이다. 찬양 가사 중 '내 모습 이대로'를 의미한다.

 

3) 하나님이 정한 경계를 지키라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정한 경계를 넘지 말라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을 액면 그대로 보면 땅에 선을 긋고 넘지 말라는 애들 놀이의 한 장면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본질은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존재의 경계를 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순종하라는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사람은 하나님이 정한 자리가 있는데 이를 벗어나면 그게 죄다. 죄라는 말의 원어가 가진 의미가 '벗어나다'라는 걸 생각하면, 경계를 넘지 말라는 말씀의 엄중함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정한 자리를 벗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죄

 

멀지 않은 근래에 우리나라의 한 목사가 '하나님 까불지 마!'라고 광장에서 소리친 적이 있었다. 그건 누가 봐도 정신 나가 모습이긴 한데 아쉽게도 그렇게 선명하진 않아도 기독교인 대부분이 하나님을 그렇게 대하고 있다. 자기가 기도한 것은 이루어줘야 하는 하나님을 생각한다. 기도나 자기가 소망하는 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앙을 버리는 태도가 이를 증명한다. 하나님은 내가 정하고 바라고 그래서 간구한 걸 성취해 줘야 하는데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은 소용없다고 판결한다.

 

가룟유다가 그랬다.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란 예수님의 말씀에 '이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결정했다. 그리스도, 메시아가 아닌데, 사람이 원하는 대로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은 그저 종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종의 값에 예수님을 팔아넘겼다. 이 가룟유다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욕하지만, 자기가 바라는 것이라면 반드시 해 줘야 하는 존재로 하나님을 믿는 마음은 모두 가롯유다의 마음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한 경계를 넘는 것이다.

 

징벌

하나님께서는 명령을 어긴 사람을 반드시 죽이라고 했다. 돌로 쳐 죽이거나 화살로 죽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명을 어긴 사람에게 손도 대지 말라는 이유다. 손을 댄다는 것을 금한 이유는 번제를 드릴 때 제물에 안수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른바 '접촉 신앙'이란 개념인데, 손을 댄다는 건 같은 정체성을 가진다는 상징성을 가진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뜻은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능동적이고 순종적이지 않은 사람, 세상과 구분되지 않는 사람, 자기 자리를 벗어난 사람이 되지 말라는 의도의 말씀이다. 그런 사람에겐 하나님이 임하시지 않으니 그게 바로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기 위해 창조된 사람에게 하나님이 임하시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목적을 상실한 존재고, 하나님의 뜻과 창조 목적으로 보면 죽은 존재다.

 

시내산 앞에서 하신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가장 기본적 자세에 관한 말씀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이 기본적인 자세를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이런 태도가 본성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임한 사람은 이스라엘게 명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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