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출 20:3)

 

하나님은 가장 먼저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너에게 두지 말라'라는 계명을 주셨다. 여기서 ''는 하나님께서 종살이하는 삶을 안식으로 여기는 삶에서 건져낸 사람이다. 명백히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앞서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사람에겐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하나님이 ''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신은 여호와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 사람에게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사람은 자기 나름의 신을 믿는다. 신이란 내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의 능력 이상을 가진 존재다. 다시 말해 나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다. 이런 정체성 때문에 오히려 신은 사람에 의해 정의된다. 사람이 무엇을 자기 삶의 문제로 보느냐는 관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이 정해진다. 육신의 겪는 난관이나, 육신이 바라는 바를 이루기에 버거운 문제 해결을 바라는 사람에겐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신이다. 그래서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어려움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의 해결을 바라는 사람 중에는 돈이나 권력이 신이라고 말한다.

 

신을 믿는 사람의 문제에 의해 신이 만들어진다.

 

결국 육신의 삶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신이 정해진다. 가난을 해결해 주기 바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이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란 말씀에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하소서!"라며 찬양하고 기대했던 마음을 버리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았다. 육신의 질병과 가난이 인생의 문제, 구원의 필요성이라고 믿는 이들의 신은 당연히 가난을 해결하는 다산의 신이다. 설사 그들이 믿는 신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고 해도, 그 신의 실체는 '바알''아세라'.

 

육신의 문제를 신께 의탁한다면, 그 신을 하나님을 불러도 실체는 바알과 아세라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신 배경에는 하나님의 정체성이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먹을 것, 입을 것을 해결하는 신이 아니라, 먹을 것, 입을 것 얻는 것에 종이 된 삶을 안식의 상징인 집으로 여기는 삶에서 구원하시는 신이다. 결국 십계명 첫 번째 계명의 본질은 "너는 무엇을 구원으로 여기느냐?"에서 출발한다. 먹고 입는 것이 삶의 문제라고 여기는 이들에겐 여호와 하나님이 신이 아니다. 그들은 다른 신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무엇을 구원으로 여기느냐가 곧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을 지키는 기준이 된다.

 

하나님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아 보일 순 있지만, 실상은 다른 신을 믿는 것

 

사람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믿지 않으려 경계한다. 경계한다는 건 자신이 이 계명을 어길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첫 번째 계명을 어길까 감찰도 한다. 계명을 어겼을 때 지불해야 하는 대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계명을 지킬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없다. 즉 하나님과 '너와 나'의 관계가 형성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첫 번째 계명은 전혀 지키기 어려운 계명이 아니다. 하나님과 자신이 '너와 나'의 관계라면 계명이라 하기보다 관계를 설명하는 말씀이다. 하나님과 '너와 나'의 관계가 형성된 사람에게 계명은 지켜야만 하는 법이 아니라, 자기 삶의 모양을 설명하는 말씀이다.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본성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에겐 비단 첫 번째 계명뿐 아니라 십계명이나 모든 계명이 그렇다. 그저 살기만 하면 지켜지는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이 삶이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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