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홉 번째 재앙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재앙을 당하지 않기 위해 뭔가를 할 필요나 요구는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은 달랐다. 재앙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엄격한 하나님의 요구사항에 순종해야 했다.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 안에서 금방이라도 나설 수 있도록 차림을 한 상태로 어린양과 무교병(누룩이 들어가지 않아 부풀지 않은 빵)을 먹으라는 말씀에 순종한 사람만 이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

 

10번째 재앙을 포함한 모든 재앙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애굽기는 수천 년 전 애굽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 상식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서술해 놓고 이것을 믿는 게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는 프레임 속에 사람을 초대하는 말씀이 아니라, 한 사람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일로 정의된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에 순종하는 존재가 되는 과정에 관한 말씀이다. 그렇다면 당연하게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는 존재가 되는 과정에서 결별해야 하는 이전 삶과 가치관이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10가지 재앙이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애굽에 내려진 10가지 재앙은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는 존재가 되지 않았을 때 삶이 겪는 일들이다. 그리고 그 모든 재앙의 본질이 수렴한 끝판왕이 바로 장자의 죽음, 10번째 재앙이다.

 

10번째 재앙은 떠나야 하는 구원 이전 모든 삶의 고난이 수렴된 사건이자 모델, 곧 우리가 구원받아야 하는 이유와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얻는지를 보여준다.

 

 

(1) 어린 양이 가진 의미

앞서서 우리는 10번째 재앙의 대상이 된 장자, 그러니까 아들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봤고, 아울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의미도 함께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월절 규례에서 제물이 된 어린양이 가지는 의미를 같이 생각해보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의 대속이 있는 사람에게는 10번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당시에는 염소도 제물이 되었지만 결국은 어린양이 대표다.

 

1년 된 수컷 어린양(혹은 염소)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집 안에서는 허리에 띠를 띠고 지팡이를 든 상태로 양고기를 먹되 뼈를 꺾지 않은 채 먹고, 양고기와 함께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과 쓴나물을 함께 먹으라는 것이 유월절의 규례다. 양의 대속,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를 대속한 어린 양이라고 한다.

 

이처럼 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상징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했을 때부터 대속의 제물이었다. 어린양은 언제나 사람의 죄를 대신하는 제물이기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다. 우리가 만약 구원을 얻는다면 그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아담의 때부터 구원은 대속이 있었다. 이는 차비를 대신 내주는 것이나, 곤장을 대신 맞는 게 아니다. 이 대속의 본질은 본이 되는 것이다. 굳이 본을 보이지 않아도 되는 존재, 즉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이 되어 죄인의 운명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죄에서 회복된 삶의 모습까지 기꺼이 보이신 게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이다. 그것을 보라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사람이 보라고 높이 달리신 것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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