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0) 말에 능치 못한 자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출애굽기 Date : 2023. 8. 3. 12:18 Writer : 김홍덕

하나님께서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가 다시 지팡이가 되는 기적과 문둥병이 발하였다가 깨끗해지는 기적을 보이셨음에도 모세는 자신이 말에 능하지 않다는 핑계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또 사양한다. 결국 하나님은 진노하시면서 형 아론을 데리고 가라고 말씀하신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입을 하나님이 만들었다는 것을 모세에게 상기시킨다.

 

겸손 같아 보이는 모세의 모습은 단지 이스라엘의 지도자 역을 사양하는 게 아니다. 모세의 모습은 하나님의 일, 구원에서 순교에 이르는 모든 하나님의 일을 행함에 어떤 조건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람의 일반적인 태도다. 사람이 생각하는 조건은 다분히 사람의 생각이고, 분명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이지만 사람은 대개 이렇다. 그리고 그 조건은 대부분 돈, 곧 경제적인 것들이다.

 

하나님의 구원과 일에 사람의 조건은 필요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함에 있어 제시하는 조건은 하나님께서 부자가 되게 해 주시면 그 돈으로 주의 일을 하겠습니다!’라는 다짐 같은 것인데, 이게 복음의 사역은 물론이고 심지어 구원도 그렇게 생각한다. ‘먹고 살기도 급한데 인생의 의미가 무슨 소용이냐?’는 식이다. 말이 둔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어렵다는 모세의 항변이 사람의 이런 모습을 대변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이런 태도를 장사하는 것이라 일갈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출 4:11)

 

또한 모세의 사양과 변명에 관해 네가 걱정하는 입과 말은 내가 지은 것이란 말씀으로 탄핵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예수님을 통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천부께서 이미 다 아신다.”라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표현할 사람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시고 미리 다 준비하시는 분이다. 이게 <여호와 이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사람의 육신과 말은 형식일 뿐, 본질은 하나님의 의다. 그리고 의가 온전하면 형식은 자연스레 온전하다.

 

모세가 언급한 말에 관해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게 있다. 바로 말은 형식이란 것이다. 본질은 말로 표현하는 의도다. 말이 어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기 어렵다는 모세의 변명은 의도보다 형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건 모든 사람의 생각이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일이 갖추어져야 하나님의 일이 온전하게 된다는 사람의 생각이다. 교회를 잘 건축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사람이 모인다는 생각이 그렇다. 그런 교회에는 형식이 중요한 사람이 모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이유는 하나님의 의를 표현할 형식을 가진 존재가 필요해서다.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는 하나님의 반문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 이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까지 언급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입을 만드셨다는 건, 하나님의 의라는 무형의 뜻이 입으로, 말로 표현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입과 말은 의가 분명하면 그에 종속된다.

 

사람은 때로 예수만 믿으면 도둑질해도 되느냐?” 묻기도 한다. 그건 그리스도가 도둑질하는 본성을 가졌느냐?”는 뜻이다.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질문이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같은 본성에서 비롯된다. 마귀의 자손들은 마귀의 본성대로 행동하며 산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게 자기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형식은 의에 종속된 것이다. 무엇이 본질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는 태도다.

 

하나님이 조성한 입의 말이 어눌해서 순종하지 못하겠다는 모세의 모습은 눈에 보이는 형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는 사람의 모습이자, 사람이 생각하는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사람의 불신을 대변한다. 모세에게 한정된 마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이란 뜻이다. 생각해보면 구원은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형식이 아닌 본질이 바뀌는 것, 생명이 바뀌고 바뀐 생명의 본성대로 사는 것이 구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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