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애굽왕 바로에게 가서 히브리 사람의 여호와 하나님이 임하셨으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러 사흘 길쯤 광야로 가는 걸 요청하라 명하셨다.(3:18) 애굽의 종살이를 벗기 원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세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희생이 애굽의 종으로 사는 이스라엘이 바라는 구원이란 말씀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구원 역시 하나님께 나를 드리는 것일 것이다.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는 존재가 되는 것이 구원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규례는 오늘날 예배가 되었고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려는 마음은 여전히 충만하다. 하지만 하나님께 나를 드리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다는 생각을 가장 잘 대변하는 사례는 아마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이나 선교사로 가는 것과 같은 일들이다. 희생이라는 자체가 자기의 유익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께 희생을 드린다는 건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인생이 되겠다는 의미로, 번제물이 죽고 번제물을 드린 사람은 하나님 앞에 깨끗해진다는 제사의 본질이 그렇다. 깨끗해진다는 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상태가 되었다는 의미다. 따라서 하나님께 희생을, 제사를, 예배를 드린다는 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되겠다는 순종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모세에게 명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아 구원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희생을 드린다는 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

 

다행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 대학에 진학하는 순간에도, 결혼을 앞두었을 때도, 직장을 얻거나 사업을 할 때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 어떤 선택을 마주했을 때 어디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지 알려 한다. 그런데 사람의 이런 태도가 희생이 곧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생각에 부합하는지는 생각의 여지가 있다. 육신이 마주한 선택 어느 한쪽에만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인지 생각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육신의 일을 두고 어느 선택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려는 걸 성경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사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하는 선택을 요하는 일은 거의 육신의 일이다. 양심이 있다면 이를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사람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뜻은 어떤 선택이 성공을 보장하는지 알고 싶다는 게 사실상 본질이다. 하나님이 이걸 모르시지 않건만 사람은 이걸 감추려 한다.

 

 

게다가 하나님의 뜻이 무언지를 알고 싶은 선택을 마주한 사람 대부분은 자기가 원하는 게 이미 정해져 있다. 순종보다 하나님이 자기 생각에 명분을 더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기가 바라는 성공을 담보할 목적으로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 하나님의 마음을 사려 한다. 성경을 지키는 경건한 행동, 본능에서 비롯되는 생각까지 떨쳐버리려는 노력, 당장 경제적 어려움을 무릅쓰고 헌금을 드리는 것들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이런 마음을 두고 하나님과 장사, 곧 거래하려는 것이라고 일갈하셨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앞서 설명한 하나님 뜻에 관한 사람의 태도 속 하나님의 뜻은 사람 밖에, 자아와 심령 밖에 있는 일이라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하나님께 희생을 드린다는 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심령에, 자아에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것인데, 정작 사람이 알고 싶은 하나님의 뜻, 곧 선택들은 모두 사람 밖에 있는 세상일이라는 걸 간과하면 안 된다.

 

결론적으로 사람은 하나님이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먹고 입는 세상일의 결론이나 미래를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고 있는 셈이다. 이게 중요한 건 하나님의 뜻이길 바랄 정도로 간절하게 세상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은 다음 아니라 애굽의 국고성을 쌓는 노예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표현된 세상 가치 추구에 매인 종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구원을 베푸시려는데 구원받았다면서 어디에 세상 가치가 있는지를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로 회칠한 다음 그걸 순종하겠다고 예배드리는 걸 구원받은 사람의 희생이라 할 수는 없다.

 

세상일의 선택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는 건 오히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세상 가치에 종으로 매인 것

 

하나님의 뜻은 사실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미 사람을 향한 목적과 뜻을 분명하게 밝히셨으므로 목사님이나 기도원에 가서 알려 할 게 아니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이미 선명하게 다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는 건 이미 분명하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 사람을 창조한 목적을 삶의 목적과 의미로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향한 모든 뜻을 이미 밝히셨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은 이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표현하는 존재로 창조한 사람이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종으로 매인 삶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하나님의 구원이다. 하나님께서 종살이를 벗고자 간구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구원을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 우리가 알아야 하는 하나님의 뜻은 오직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 그 하나다.

 

예수 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는 말씀도 이를 뒷받침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곧 뜻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삶이 된 존재가 그리스도 예수이기에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구원을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삶을 드릴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인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로 사는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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