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4-12) 믿음으로 -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히브리서 Date : 2020. 4. 16. 08:19 Writer : 김홍덕

아브라함과 사라


아벨과 에녹은 그 행적이 분명하지 않지만 믿음으로 살았다는 말씀을 한 것은 그들에게 나타난 일이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나타난 것은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먼저 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들에게 나타난 것은 그것이 본질이 아니라 그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특히 아벨의 경우 형에게 죽임을 당하는 불행한 일을 당했지만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이 사람이 바라는 것이 성취되는 것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어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일이 믿음으로 된 것임을 설명한다. 히브리서가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브라함은 로봇과 같이 하나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더니 아주 늙어서 아들도 얻고 부자가 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정한 땅에 가면 평안한 삶이 주어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도 아니다. 당연히 아브라함이 좋은 땅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도 아니다. 그가 믿었던 것은 하나님이라는 신의 신실함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얻는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결과를 믿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주 다르다. 하나님을 믿으면 좋은 결과를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은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믿음의 실체다. 부인하고 싶겠지만 평소에 책상에 물만 엎어져도 하나님께 무엇을 잘못한 것이 없냐고 말하기도 하는 삶이 아닌가? 물이 엎어지는 것은 불행한 것이며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것과 다르다.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을 때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따라 간 것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사람도 누가 와서 어디 가자고 할 때 어디 가는지 말하지 않으면 거의 가지 않는다. 단 하나 가자고 하는 사람을 신뢰할 때만 어디 가는지 묻지 않고 따라가는 것과 같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은 하나님이 시키는 것을 했을 때 얻게 될 유익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은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어디로 갈 것인지 말씀하지 않아도 가는 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벨의 일도 그렇고, 스데반과 바울을 비롯한 순교자들의 일도 그렇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과 뜻과 의가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렸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안과 성공을 늘 담보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다만 사람을 자신의 목적대로 사용하실 뿐이다.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자기 육신의 안위를 얼마나 중요하게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처음부터 자신이 조성한 인생이 아닌데 자기 삶을 사랑한다. 이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하나님이 사람을 마음대로 쓰시는 일로 사람이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서 하나님이란 신을 어떻게 믿느냐의 차이가 드러난다. 하나님을 창조주와 주인으로 그리고 그 행사가 선한 분이라는 것을 믿느냐 아니냐가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주며 주관자고 그 성품이 인자하고 선하시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뼈대고 기둥이다. 그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감사한 것이 된다. 특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육신의 고통과 불행이라는 것도 힘들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경영하시는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에 생각이 미치느냐 아니냐가 믿음이 어떠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사라의 일도 함께 언급하는데 그 또한 마찬가지다. 사라가 믿었던 것은 아들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었다. 사라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을 때 웃었다. 사라는 자신이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믿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신실한 분이라는 것은 믿었다. 그래서 웃었을 때도 책망 받지 않았고, 이 히브리서에서 믿음의 선진으로 영광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히브리서가 ‘믿음으로’ 된 것이라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좋은 결과를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조성하신 세상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선하고 신실한 일이라는 것을 믿었다. 하나님의 존재 정체성과 그의 성품을 믿은 것이다. 그런 믿음이 나타나니 사람들이 선망하는 결과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반대로 아벨과 바울과 스데반과 야고보와 같이 사람들이 끔찍하게 여기는 삶도 있다는 것이다. 


이로 볼 때 히브리서에서 말씀하시는 믿음으로 된 일들이 나타나게 한 보이지 않는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 정체성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내용을 가진 분이라는 것, 모든 의와 선을 가진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선진들의 일로 나타난 것이다. 하늘의 참 것을 믿었고, 그것이 세상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일이 바로 믿음의 선진들의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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