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4-12) 믿음으로 - 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히브리서 Date : 2020. 4. 15. 19:33 Writer : 김홍덕


히브리서는 믿음에 대한 선진들의 일들을 열거하고 있다. 먼저 가인과 아벨의 일,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 그리고 노아와 아브라함과 사라의 일을 설명하고 있다. 노아와 아브라함은 믿은 내용과 결과가 분명하기 때문에 우선은 설명하기 쉽다. 하지만 노아나 아브라함이 얻은 결과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편견을 가져올 소지도 높다.


생각해보면 아벨과 에녹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선명하지 않다. 에녹은 그냥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말만 있다. (창 5:24) 그리고 그의 아들 므두셀라가 성경에서 가장 오랜 산(969세)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에녹에 대한 기록의 전부다. 가인과 아벨에서 주인공은 오히려 가인이다 싶을 정도다. 아벨의 일은 없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음을 인하여 가인이 질투하고, 그 질투로 인하여 친동생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아벨과 에녹이 믿음이 있었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


특히 아벨은 믿음의 결과가 살인을 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결과로 기대하는 것과 아주 다르다. (사람들이 성경의 이런 부분을 왜 주목하지 않는지 신기할 정도다) 예수님은 더 그렇다. 세상 실패자의 극한인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께 사람들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구하는 것은 정말로 생각이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것으로 보아 히브리서가 말하는 믿음은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믿음과 다르다. 즉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의 성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니 그것을 주실 것이라 믿는 믿음과 히브리서가 말씀하고 있는 믿음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라면 아벨은 살해당하지 않고 보호받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믿음의 방향과 대상의 차이다. 먼저는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을 향하는 방향이다.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하는 것은 충성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면 하나님의 뜻이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이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사 사람이 바라는 것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교회가 발전하고 기도와 성경을 읽는 신앙 생활을 위한 유익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방향이 사람이 원하고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벨을 생각해보면 된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간구도 마찬가지다. 결국 믿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도록 사람 자신이 하나님의 임하심과 주관하심과 사용하심을 허락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벨과 같이 살해당하거나, 스데반과 같은 많은 순교자들의 순교를 믿음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리고 또 하나는 믿음의 결과다. 사람들은 육신에게 조금만 불행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벌을 주시는가?’ 생각하고, ‘내가 믿음이 없고 무엇을 잘못했는가?’ 경계한다. 즉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육신의 정욕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나 노아와 같은 선진들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언제나 들을 수 있지만 아벨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기는 어렵다. 믿음의 실체가 불분명해 보이기도 하고 결과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것과 반대기 때문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결과를 믿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믿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방향성과 연관이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결과를 보장하거나 이루어 주실 것이라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은 나를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주며 나의 존재 목적과 의를 가진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결과가 아니라 대상을 믿는 것이다.


믿음이란 내가 생각하는 것, 그것이 사람 생각에 설사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께 구하면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쓰시든 내가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분이 아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아벨을 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에녹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위해서 먼저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했다. 아벨과 에녹, 노아와 아브라함으로 나타난 것들은 모두 그들이 하나님이 사람을 쓰시겠다고 하시는 의에 순종한 사람들임을 증거한다. 그들이 형을 대신해서 죽겠으니 그렇게 해 달라고 기도한 적도 없고, 나를 죽지 않고 하늘로 올려 달라 한 적도, 세상이 망할 때 나를 구원해 달라는 말도 한 적이 없고, 내가 살 땅을 정해 달라고 말한 적도 없다. 그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대로 그들이 순종했다는 것이다. 시작도 하나님이 결과도 하나님 맘대로인 일에 자신을 드렸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믿음 있는 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자신을 내어 주었기에 하나님께서 맘대로 하신 것이다. 그들에게 어떤 일이 나타났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것을 그들이 순종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결과를 기대하거나 구하거나 설계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무엇을 하려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고 그들에게 일어난 일들은 그 믿음이 나타난 것이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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