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장과 절은 처음 기록할 때 매긴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성경을 장절을 구성하는 숫자로 예언을 논하는 것은 난센스다. 우리가 흔히 믿음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은 히브리서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의 일부다. 이 장만 파편화하여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1장의 내용은 예수님의 구속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것을 설명하는 부연 설명에 가깝다. 오히려 믿음장의 핵심은 12장 1,2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2)


히브리서 10장에서 설명한 온전한 제사, 단번에 드린 제사 그리고 더 이상 죄를 사하는 제사가 없다는 말씀들에 의지하여 12장에서 말씀하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 우편, 즉 바르고 선한 편에 앉는 것을 믿으라는 말씀을 위한 믿음의 명분을 설명한 것이 믿음장이다. 이것을 오늘날의 현실을 반영하여 쉽게 말한다면, 거듭났다고 믿는다면 죄가 없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담대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에 담대함과 확신을 주고자 히브리서 기자는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를 기준으로 보면 유대인들에게 제사는 할례나 율법과 함께 일상이고 관습이고 자신들이 하나님 백성이라는 명분이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은 온전하게 하였으니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설득하고 있는 것이 이 히브리서의 한 단면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주로 믿는 유대인들이라고 단번에 “그럼 되겠다”라고 삶을 바꾸기 쉽지 않은 문제다. 


오늘날도 당연히 그렇다. 행위가 심판과 정죄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 살다가 존재의 정체성이 심판의 기준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믿음을 가지게 되어도 금방 자기 행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로움을 논하지 않게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였으니 이제 나는 죄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바로 그것을 그렇게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의 구속이면 우리가 하나님 우편, 곧 바르고 선한 자리에 앉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역설적으로 생각해볼 것이 있다. 바로 더 이상 죄를 사하는 제사가 없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다시 사함 받아야 할 죄가 있고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제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저주지만 이제 더 이상 정죄함이 없음을 믿는 사람에게는 담대함과 확신을 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하시려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을 그대로 받으면 더 이상 나를 위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말씀이 바로 죄를 위한 제사가 더 이상 없다는 말씀이 되는 것이다.


이로 보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의 역사를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까지 보내어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셨는데, 구원은 받았다고 하면서 스스로 죄 없다고 말하지 못하여 다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은 전혀 기쁠 수 없다. 그리고 제사가 별 것 아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려고 하는 모든 행동이다. 심지어 기도하고, 성경보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것도 다 마찬가지다. 그런 것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게 여기시고,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을 형통하게 하신다 생각하는 것이 제사다. 그리고 그것이 율법이고 행함으로 의로워지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믿음도 아니고 구원도 없다. 아직 의로워지기 위한 제사, 곧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고 있으니 아직 죄가 있는 것이다. 죄가 있으니 당연히 구원이 없다. 이것마저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어떻게 할 수 없다. 심판하실 수밖에 없다.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람이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경영하시고 아들까지 구속의 제물로 내어 주신 것을 사람이 믿고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고, 죄를 사하는 제사도 더 드리지 않으며, 자신이 죄가 없는 온전한 존재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 하나님께서 일하심에 보람을 얻으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진 영광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그러면 사람이 할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자신의 것으로 받고 순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듯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여기서도 믿음이 완전히 수동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구속의 역사는 하나님이 다 하셨다. 사람은 단지 그것을 인정하고 순종하고 자신의 일임을 믿으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믿음이라고 거꾸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꾸 뭔가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사람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순종하고 수용하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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