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 (2)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10. 7. 16:28 Writer : 김홍덕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이심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실 때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이라는 기도를 하셨다.


사실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엄청난 것이다. 이 기도문은 구절구절이 모두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이 되었으며, 영생이 있는 제자들 역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롯된-말씀이 육신이 된-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자들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로 가득하다. 이 요한복음 17장에 대하여는 다음에 정말로 상세하게 다루고자 한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사람들은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을 매우 조심스럽게, 아니 위험한 생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 사람 안에 거하셔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시기 위하여 지으신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의 이미지 곧 성품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사람들이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말에 경기를 일으키는 것은, <하나 된다.>는 것과 <같아진다.>는 것을 혼돈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과 하나님이 하나’가 된다고 하면 사람이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고 하면, ‘사람이 하나님처럼 죽은 사람을 살리고, 바다를 가를 수 있다는 것인가?’라며 반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 같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에 하나님께서 들어오심으로 사람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표현해내는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다.(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와 같은 육신이 하나가 되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나신 분이시다. 즉 예수님을 보면 마치 사람들이 십자가 목걸이를 보면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연상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해 내는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재이다. 콜라병은 콜라와 하나가 되기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콜라병은 심지어 빈병이 되어도 콜라의 형상을 타나낸다. 콜라는 액체라서 형상이 없지만, 콜라병 안에 들어가서 그것을 보는 이에게 콜라를 떠올리고 먹고 싶게 만들고 결국 먹게 만들며, 심지어 빈병 자체로도 그것을 떠 올리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과 에스라/느헤미야를 통하여 성전을 지으시고 그 안에 거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성도들에게 “너희 몸이 거룩한 성전”이라고 하셨다. 이런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거하시겠다는 뜻이다. 즉 사람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므로 사람과 하나가 되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시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으시듯 사람을 지으신 목적인 것이다. 성전이 여호와의 전이듯,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언감생심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겠는가?’라며 망설일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사람의 운명이고 존재의 목적이다. 성전이 하나님이 거하시기 위하여 지어짐과 같이, 우리 육신의 삶도 그러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으니 당연히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 안에 하나님이 거하심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사람의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 안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과 하나가 되시는 것은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함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 하나님과 함께 영광스러워지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 17:1)

라고 하신 것이다.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존재하는 목적이다. 그것이 아니면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없다. 예수님을 믿을 이유 또한 없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이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그 이유 아닌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깨비 방망이로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사람 안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으로 그 사람이 가진 육신의 삶으로 그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사람의 존재 목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사람의 존재 의미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의 내용이 되시고 사람은 그것(내용이신 하나님)을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