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 vs. 영지주의 (3)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내용과 형식 Date : 2015. 10. 5. 15:50 Writer : 김홍덕

율법주의 vs. 영지주의



이글에서 영지주의를 인용한 것은 영지주의 대표적인 특성이자 골격을 인용하는 것이다. 영지주의가 육신의 문제를 간과하는 것 때문이다. 사실 영지주의와 같이 지금도 많은 교회들, 신앙가치관들이 세상을 무시한다. 하지만 그건 아주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것은 결국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는 것에서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신앙은 신앙이 없는 사람과 세상을 도화지로 하여 그리는 그림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 역시 믿지 않던 사람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에 있는 것이다.(물론 믿는 사람들도 믿는 사람에게서 표현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광스럽게 여긴다.)


그러므로 신앙은 세상을 떠나면 안 된다. 세상을 주인으로 삼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이 아니다. 믿는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그 삶으로 표현되면, 믿지 않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나의 정체성과 존재의 목적도 저것이구나!’라고 깨닫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신앙이기 때문이다. 안 믿는 사람이 없으면 관객 없는 연극이고, 도화지 없는 수채화일 뿐이다. 영지주의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많은 신앙인들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세상일을 등한시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부모와 등지기도 한다.(물론 정말로 좋지 못한 부모 밑에서 혹독한 삶을 사는 이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누가 봐도 참 신사적이고 점잖고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인데도 단지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등 돌리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잘못된 신앙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바로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의 의가 삶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내용이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내용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육신이라는 형식의 삶을 그렇게 대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 ‘누가 하나님의 아들인지’를 보이신 예수님의 정체성이 이미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다. 그렇다는 것은 누구라도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제자의 삶을 살려고 한다면 결국은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과 의를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하니, 예수님과 같이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 곧 사람 안에 생명이라는 내용이 육신의 삶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신앙에 대하여 더 알면 알수록 이런 형상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리에 대하여 더 밝으면 밝을수록 그렇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썬데이 크리스찬이라 할 수 있는 사람, 관습으로서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선은 열정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은 율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행동을 똑바로 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핵심은 그 사람들의 행동이 안에 생명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살아야 천국을 가던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지의 차이이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주의든 영지주의든 또는 세상과 타협하여 타락한 신앙이든 간에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 안에 생명의 말씀이 있고, 그 말씀이 생명 있는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나무가 되고 열매가 되듯 그 사람의 삶과 생활을 바꾸어 내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존재 목적임을 깨닫고, 그 깨달음이 삶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내용만 부여잡고 있으면 된다고 하면서 세상을 등한시하는 것은 영지주의고, 의지와 신념으로 자신의 행동을 관리하면 영혼이 천국에 갈 수 있는 영혼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율법주의다. 그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생명의 법은 모르는 것이다. <내용과 형식>이라는 하나님의 법을 모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의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면 천부께서 다 알아서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의가 가진 생명이 모든 것을 나타낼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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