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는 형식적으로 보면 물리적인 세상을 만드시는 과정에 대하여 기록하신 것으로 보이지만, 천지창조가 어디에 다다라서 끝이 나는지를 보면 천지창조의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알다시피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시면서 안식하셨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 천지창조는 사람이 목적이다. 하지만 이는 생물학적인 인간을 만드신 것을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람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께서 안식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을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흙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의 생기를 부여 받은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출처 : nopimi님의 naver 블로그>



그러므로 육신이 생물학적으로 사람이라고 다 하나님께서 안식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호흡이 하나님의 생기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생령이 되어야 비로서 그 생기를 받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즉 살아있는 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살았다고 할 수 있어야 비로서 하나님의 생기가 그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코로 숨 쉰다고 다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았다는 것은 어떤 목적 안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전화가 되지 않는 전화기는 아무리 멀쩡하고 디자인이 좋아도 죽은 것이다. 그와 같이 이 천지창조의 전과정도 하나님의 생령이 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이 그 창조 목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 곧 이미지를 나타낼 수 없다면 생물학적으로 어떤 상태던 생김새가 어떻던 다 죽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를 볼 때 하나님의 이미지를 떠 올릴 수 없다면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에 대하여 그 이미지를 상상하면서 송아지로 표현하기도 하고, 각종 드라빔으로 또한 우상으로 조각하여 하나님의 이미지를 형상화 하려 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알게 하는 어떤 존재도 이 땅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이다. 즉 사람들이 어떤 것을 보고서도 하나님의 이미지를 바로 알 수 없는 상태와 시간들이 바로 태초 이전의 시간이고 상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는 과정이 빛이 있으라 하셔서 하나님의 이미지에 대하여 인식할 수 있는 상태가 되게 하심으로 시작해서 결국은 하나님의 형상이 그 안에 있는 생령이 되는 과정이 바로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한 사람의 상태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이미지와 형상을 알 수 없는 캄캄하고 어둡고 혼돈스런 안목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그 사람을 볼 때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알 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시는 것이 바로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천지창조의 과정이다. 즉 한 마디로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개념과 안목이 없는 사람이 오히려 그를 볼 때 하나님의 이미지를 알게 하는 존재가 되는 과정이 바로 천지창조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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