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사람을 만드시다 (7)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3. 12. 9. 10:49 Writer : 김홍덕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육신의 문제에 대한 도움을 얻고자 함이 주류를 이룬다. 한마디로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한편으로 보면 보통의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그런 것을 다루지 않고, 고상하게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 같지만, 그 뼈대는 늘, <이 세상에서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이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명이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는 말이다. 정말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죽지 않아야 한다. 성공이라는 것이 뭔가? 다른 사람 못하는 것을 이루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다 죽는 세상에서 살아 남아야 성공인 것이다. 그게 아니면 결국 다 실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성공해서 육신이 잘 먹고 잘 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육신의 범주에서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 <사람은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모든 것이 다 헛된 것이다.


사람들이 육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그것 밖에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이 있다면 그럴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모든 종교 단체의 설교 또한 결국은 육신의 문제를 얼마나 고상하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에 집약되어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육신의 삶이 존재하는 목적이다. 그러니까 이 육신에 깃든 자아 정체성을 밝히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자아 정체성에 대한 정의가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정체성은 위대해지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흙과 같이 씨앗을 품어 생명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미지를 씨앗과 같이 받아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존재의 목적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삶이 그렇지 않다. 그저 강해지려 한다. 이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지창조의 과정을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즉 사람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려야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이다. 그 세계는 바로 그리스도의 세계이다.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 특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아닌가 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른다고 까지 하기는 어렵지만 네피림과 같이 혼합된 종교관인 것은 분명하다. 


모든 것을 접어 두고, 더 좋은 건축 자재로 교회를 지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그 가치관, 세상에서 성공할수록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그 가치관, 그것 하나만으로 이미 흙으로 지으진 사람이 아니라, 흙으로 벽돌을 만드는 시날 광야의 사람들과 같은 모습인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하여 인간의 본성을 감추고 훈련해서 고상하고 능력있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훈련과 노력의 과정에 기도와 교회의 강령이 도구와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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