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1-37장) 엘리후의 책망 – 5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욥기 Date : 2019. 3. 27. 06:42 Writer : 김홍덕

하나님께서는 때로 사람을 아프게도 하신다.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때로 사람을 아프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엘리후의 이 말은 현상적으로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경영하심이 사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은 삶이 분명히 존재하는 명제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에 대한 시각 혹은 해석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극명하게 다릅니다.


욥기 안에서만 봐도 최소한 3가지의 견해가 나옵니다. 사람에게 고난이 임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는 세 친구들이 있고, 자신은 의로운데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듯 곤고하게 하신다고 생각하는 욥의 견해가 있으며, 사람의 고난은 생명의 빛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경영하심의 일부라고 말하는 엘리후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곤고함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는 것은 단지 고난에 대한 견해만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곤고함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인생의 목적과 의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갖은 증상이라도 존재의 목적을 바라보는 안목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의 브레이크는 분명히 달리는 것을 방해하고 열을 내고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지만 원래 그것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마찰을 일으키고 열을 내며 진행에 방해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는 일반화된 개념으로 브레이크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세 친구들은 단지 사람이 고난을 겪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한 것이라고 일반화된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거나 만드는 물건들도 그러려고 목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물건의 입장에서 보면 고난을 겪는 것처럼 사용하는 것이 태반입니다. 고기 불판은 열로 뜨겁게 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지만 사용할 때면 뜨겁게 가열합니다. 그것은 그 존재의 목적상 절대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불판에게 화가 나거나(욥의 생각) 불판이 사람에게 잘못해서(세 친구의 생각)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은 당연하고 평범한 말 같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벌을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피동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에 따른 후속 조치를 하시는 분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미리 예비하신다는 말씀을 무색하게 만드는 생각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서 불판의 예와 같이 일반적인 그릇이나 도구들도 그 사용 목적을 위하여 때로 씻기도 합니다. 씻는 과정에서 거친 수세미로 긁기도 하고, 때로는 뜨거운 물에 삼기도 하며, 때로는 약품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 순간들이 그릇이나 도구 입장에서 보면 분명한 고난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도구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온전한 목적에 사용되기 위하여 행해지는 과정일 뿐입니다.


엘리후가 하나님께서는 때로 사람을 아프게도 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신 목적대로 경영하시는 것인데 사람은 피조물이고 스스로 그 인생을 시작한 것이 아님에도 자신이 겪는 일에 대하여 자기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생각하면 그 경영이 심판이 되기도 하고, 생명의 빛을 누리는 것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면서 겪는 고난이 어떤 이들에게는 죄를 범한 결과로 인식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괜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반대로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온전한 하나님의 경영하심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 차이는 인생의 존재 목적을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 혹은 인생의 목적을 자신이 부여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주신 목적에 순종하느냐의 차이에 의하여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각 외로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로서 신앙의 근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것을 바라보는 안목과 가치관에 대한 것입니다. 즉 이것은 인생의 모든 일을 이해하고 바라보며 깨닫는 지혜의 근원인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에게서 왔고 그것을 순종하는 것이 인생의 참된 자리라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의 본질인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라는 것에 대하여 전적으로 순종이 된 사람들에게 고난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인생을 주신 목적을 경영하시는 과정에서 수반된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하여 시험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때로 연단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욥이 정금 같이 나올 것이라고 말할 때 언급한 연단과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욥이 말한 정금이라는 가치는 세상에서 육신이 평안하고 성공 것과 같이 세상이 가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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