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1-37장) 엘리후의 책망 – 4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욥기 Date : 2019. 3. 26. 09:29 Writer : 김홍덕

사람들이 인생에 대하여 곤고함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맘대로 인생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세계, 어떤 일이 자기 맘대로 될 때는 곤고함은커녕 오히려 즐겁고 신나기 마련입니다. 무엇이든 맘대로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의와 뜻이 주관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랑이고 즐거움이며 감사하고 기쁨이 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런 경험은 삶의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의 삶은 자기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을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는 바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왜 그런가는 별로 생각지 않고, 그냥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인정하고 ‘그러나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하는데 까지 해 봐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라도 더 자기 맘대로 인생을 주관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왜 인생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단지 돈이나 권력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생이 맘대로 시작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인생을 자기 의지로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 뜻대로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반대로 내 뜻대로 인생을 시작한 것이 아닌데 시작되었다면 누군가의 뜻으로 인하여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그 시작한 이는 우리에게 인생을 시작하게 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이 힘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생을 주시고 경영하시는 분이 있는데 내가 맘대로 하려니 그 절대적인 뜻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힘든 것, 그 하나뿐입니다.


욥이 엘리후에게 책망을 받는 것은 욥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는 알았는데 인생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다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지 과정의 설명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행위로 판단하시지 않는 분으로 안다는 것은 다들 아라고 있고 쉬운 것으로 여기지만 이것을 아는 것은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그 보내신 자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욥이 하나님은 사람을 행위로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자랑하실 만큼 의로운 것입니다. 그런 욥이 책망을 받으면서 새롭게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체성을 온전히 아는 것 다음에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의 정체성을 온전히 알고서 그것이 인생의 존재 목적과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관과 경영과 돌보심으로 알기까지의 과정이 욥이 고난을 겪듯 힘들고 곤고한 과정이라는 것을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인생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알고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당사자인 인생이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하고, 그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나면 자연스럽게 인생의 존재 목적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 사이에 욥이 겪는 것과 같은 고난이 있다는 것을 욥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이 겪는 고난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영생을 얻은 자가 그 영생이 자기 삶을 어떻게 주관하는지를 알기 까지 겪는 영적 기반에 대한 삶의 고뇌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욥의 고난은 영생을 얻은 자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영생을 얻은 자가 그 영생의 삶이 어떤 것임을 알고, 그 아는 것이 자기 삶으로 순종되고 연착륙하는 과정 동안 겪게 되는 하나님에 대한 의문과 원망과 세상에서 비교 하고 당하는 갈등 등이 잘못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는 과정 중의 일부라는 것을 욥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욥의 고난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영생을 얻은 사람들의 신앙 여정에서 겪게 되는 곤고한 갈등이 너무나 정상적인 것이며, 그것을 통해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온전히 알게 하신다는 약속을 주심으로 인생에게 고난으로 여겨지는 그 시절에 대하여 심히 위로를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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