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계명을 지킨다.>는 말씀이 많이 나온다.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는 단순하게 보면 '기도하라'했으면 기도하고, 안식일을 지키라'하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스포츠의 세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전투는 이기고 전쟁은 진다.> 혹은 <전투는 지고 전쟁은 이겼다.> 같은 표현들이다. 경기 자체는 너무 화려하고 또한 훈련한대로 했지만 정작 경기는 지는 경우를 말하는데 이와 같은 경우는 실제로 많이 있다.


동네 축구를 해 보면 그 중에 뛰어난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들은 동네 축구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공을 몰고 골을 넣으려는 욕심으로 게임을 한다. 하지만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기에 그렇게 한다고 이겨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는 경우가 많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어떨지 모르지만, 많은 경우 한 팀에서 부문별 1등을 한 선수가 많이 있는 팀 보다 부문별 1등하는 선수는 별로 없지만 팀플레이가 잘되는 팀이 우승하는 경우가 많다. 


타격으로 치면 선수들은 훈련을 하는 이유가 실전 경기에서 공을 잘 쳐서 살아 나가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이 타자에게 주어진 계명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계명이 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팀이 이기기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팀이 이기는 것에 도움이 되기 위하여 자신이 잘 치는 타자가 되는 것이지, 잘 치는 타자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계명들도 이와 같다. 성경을 단순한 행위 규범으로 보면, 성경의 문장 하나하나를 지켜 행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율법이 대표적인 것이다. 하지만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으면 그냥 성경은 도덕책 같은 단순한 행위 규범이 된다.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은 신약 구약이 따로 없다. 다 행위 규범이다.


옛날이야기 중에 게으른 세 명의 아들을 둔 아버지가 죽게 되었을 때 게으른 아들을 걱정하여 집 앞에 있는 밭에 보물을 숨겨두었다고 거짓 유언을 하고 죽는다. 그러자 아들들은 앞 다투어 밭을 파헤치지만 기대한 보물은 없고, 그렇게 밭을 개간하여 농사짓는 삶이 보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성경에 나오는 계명도 이와 같은 것이다. 말씀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가 다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지켜야할 행동들은 행동으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본능적으로 하는 생명의 표현들에 관한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무엇에 관한 말씀인가 하면 단 하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리스도>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하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존재 목적을 가진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고 매뉴얼이고 계명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계명의 본질이요 가장 큰 정체성인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의 생명이 표현된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행동으로 지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경을 지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사는 모습과 규례를 표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성경은 신약이 아닐 요한 계시록도 율법이 된다. 이것은 자명한 것이다. 성경을 지키면 하나님의 아들이, 또한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관점으로 보면 오늘도 내일도 늘 성경을 지켜 행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경을 보는 것은 모든 성경을 유대인들의 율법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