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5:30-47) 모세의 고발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복음 Date : 2016. 1. 16. 12:28 Writer : 김홍덕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보내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서는 그렇게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을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고발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오히려 믿음이 없는 이들을 고발하는 자가 있는데 바로 모세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요한이 가장 크다.’고 하시고,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소자라도 요한보다 크다.’고 하신 말씀을 깊이 생각지 않는 듯하다. 신약시대(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에 예수님을 믿노라 하고 있으니, 당연히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자신이 세례 요한은 고사하고 모세보다 크냐고 물으면 움찔한다. 자신이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과 모세를, 또 세례 요한을 같은 법이 적용을 받는 세계에 두고서 보기 때문이다. 즉 자신도 예수님을 행함의 공로와 소유의 드림으로 믿음의 척도를 삼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보니 행함에 있어서, 또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광야에서 복음을 외친 세례 요한과 자신을 비추어 보니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관점, 그 관점을 두고 예수님께서 모세가 너희를 고발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사람이 가진 자기 신앙관이 자신을 심판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어디선가 본 아주 익숙한 모습이다. 바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서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는 것이 그것이다. 즉 아담은 자기가 가졌던 하나님과 같이 되려던 그 마음이 자신을 심판했고, 그 이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행함으로 섬기려 하니 자신의 행위가 자기가 가진 기준으로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 같지 않으므로 스스로를 늘 심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모세가 고발하는 것이다.


모세는 율법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결국은 율법이 우리를 고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히 사실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기본적인 구조가 Do 아니면 Do not 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것이 다 행위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가치관, 무엇이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고 기뻐하시는지에 대한 기준이 사람의 행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 율법의 적용을 받을 것이기에 율법, 곧 모세의 고발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모세 곧 율법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사람이라는 존재가 행위에 의하여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가치관과 믿음으로 가진 사람은 율법의 고발을 받지 않는다. 이것은 세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미국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례요한과 지극히 작은 소자를 비교하실 때에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라는 단서가 붙은 것이다. 즉 나라와 세계가 달라지면 율법의 가치로 사람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율법, 곧 모세의 고발을 받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사람에게서 서로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하나님께 영광을 얻는 것의 차이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나라이니 그곳에서는 그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것이 영광이 되는 곳이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적인 의사 결정이 영광과 존경을 받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람에게서 영광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서로의 행위를 두고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를 영광으로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이 시대의 교회들이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신앙인의 영광이 된다고 가르치고 신앙의 모습이라 설파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성공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여기는 것, 그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또 하나의 역설 같은 놀라운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모세를 믿었다면 예수님을 믿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율법을 알면 복음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게 ‘너희가 모세를 믿으니 나를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바로 ‘모세를 믿었다면 나를 믿었을 것’이라고 하시는 것은 모순과 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율법도 복음도 모세도 예수님도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에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것 같은 말씀에 대한 모든 해결책은 존재의 목적에 대한 안목이 있으면 어렵지 않다. 즉 모세도 예수님도 또 율법도 복음도 왜 우리에게 주셨는가 하는 것,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모세도 하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그 영혼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살아 있어 그 생명으로 살아내는 삶을 살기를 바라신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우리에게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당연히 모세를 믿었다면 예수님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세와 율법은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안내하는 안내자이다. 목적지는 아니다. 그리고 또 그 누구도 그 여정을 생략하고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를 바로 믿었다면, 모세의 모든 글(행간)을 제대로 읽었다면, 그 모든 모세의 글이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실제로 모세가 기록한 성전이나 율법의 모든 것은 다 예수님을 설명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 속 심령과 삶의 모양이 어떠한지를 설명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세의 글을 제대로 읽었다면 예수님을 믿었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지구상의 누구보다 모세의 율법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인데, 왜 그들이 모세의 글을 믿지 않는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지금의 사람들에게도 같다. 사람들이 성경을 믿는 것 같지만, 실상은 성경을 믿지 않고 있다. 그러니 예수님의 그 말씀은 오늘도 동일한 말씀이시다.(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이 오늘날 신앙을 가졌다면서 본질이 아닌 형식을 믿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유대인들이 모세의 글을 문자 그대로 본 것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는 것이나 완전히 같은 것이다. 모세의 율법은 사람이 행위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주심이다. 그 율법들을 정말로 육신을 가진 사람이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이 되겠다는 진정한 의지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골탕 먹이고 똥개 훈련시키듯이 율법을 주시면서 지켜보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하니, 그러면 사람이 가진 유일한 재산인 자기 삶을 가지고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 육신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율법을 딱 보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고백하게 된다.


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연단하고, 절제하고, 훈련하면 하나님의 의에 이르고 그 말씀을 지켜내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은 자기의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려는 것이다. 이것이 교묘하게도 요즈음은 스스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으니 그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신앙은 그것이 아니다. 말씀을 주신 목적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사람은 절대로 이 육신으로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얻을 수 없다. ‘육신으로’ 라는 것은 육신의 행위나 노력, 그리고 고 노력의 공로와 결과인 소산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아무리 해 봤자 원래 다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주인의 곳간에서 양식을 훔쳐서 주인께 바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게 도둑이지 뭐겠는가?


바로 그것을 아는 것이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어떤 육신의 능력이나 또 신비한 능력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아들임이 드러난 것이다. 아들이 뭐겠는가? 아버지가 가진 의의 본체가 아들이 아닌가? 그것 이상으로 의로워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육신으로 의롭게 되려는 사람들은 늘 모세와 율법이 하나님께 그들을 고발하고 상소한다. 왜냐하면 누구도 완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그 어느 순간에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심판거리가 있고, 하나님께 고발할 것이 넘쳐나는 세계이다. 바로 이러한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모세가 너희를 고발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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