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신앙인들은 예수님이 진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리는 단순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육신으로 표현됨이 진리라면 모든 사람에게 있어 유일한 진리는 그것 하나뿐이다. 사람도 예수님과 같은 육신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육신이 되는 것, 그것이 진리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것 하나 때문에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진리,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과 육신으로 표현되어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진리임이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육신 가진 인생의 진리가 그것임을 보이시려고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성정으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자기의 죄를 사했기에 또 그 예수님이 자신을 진리라고 하셨기에 예수님을 진리라고 생각하고 믿는다. 하지만 여기는 엄청난 맹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자신의 행동과 생각으로 범한 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행동으로 인한 죄를 예수님께서 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께 기도해서 바라는 것 역시 행동에 관한 것, 육신이 먹고 마시고 사는 것에 관한 것을 기도한다. 가치관의 본질이 눈에 보이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단언적으로 말한다면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자기 행동으로 범한 죄는 자기 육신이 속한 사회의 법에 따라 처벌을 받든지 용서를 받든지 하면 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지신 죄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자기 삶으로 표현해야 하는 존재라는 정체성을 떠난 것, 그것뿐이다. 그것뿐이라고 하니 약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 하나로 인하여 사람이 살면서 짓는 모든 죄가 비롯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정한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하고, 자기 안에 어떤 것은 선하고 어떤 것은 악하다는 기준을 가지고 살기에 모든 죄가 범해지는 것이다. 그 기준이 설사 성경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자기가 자기 존재의 목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가장 근본 된 죄의 문제는 외면하고 그 죄로 인하여 비롯된 행동이 죄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니 예수님께서 대신한 죄도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예수님 이전의 사람이나 앞으로 태어날 사람이 행동으로 지은 죄는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본다는 것이 이렇게 어두운 것이다. 만물도 보이는 것이 본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본질이고, 사람이 범하는 모든 죄도 사람이 자기 자리를 벗어났다는 것 그것이 본질인데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 그것이 회개고 돌이킴이다. 행동을 반성하는 것이 돌이킴이 아니다. 존재가 달라지면 행동은 자연히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그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사람에게 유일한 진리다. 그 하나만 알면 된다. 그러고 나면 그 정체성이 가진 본성으로 살게 되고,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는 삶이기에 그 삶은 성경을 지키지 않으려 해도 지키면서 살 수밖에 없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것인 신앙이고 믿음이며 그것이 진리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여주셨다.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신 것은 이 육신을 가진 삶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이셔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고, 사람의 삶의 본질이고 정체성이며, 사람에게 있어 유일한 진리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에게 진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 없이 그냥 진리라고 하니 진리라고 믿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인생 낭비다.


예수님께서 진리로 하나님께서 주신 자, 곧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을 거룩하게 하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신다. 이것은 단계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는 단계 다음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룩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진리인 사람이다. 이것은 같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거룩한 사람을 세상에 보내는 것은 파송장이나 마패를 주어 보내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진리가 되어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살도록 하신 동안에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에 보내심이다. 성경 들고 먼 나라에 가서 하나님을 믿으면 육신으로 살 동안 육신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전하는 것이 보내심이 아니다. 보내심은 이미 받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하나님이 보내심이라고 하였듯, 모든 인생은 육신으로 이 땅에 살게 된 것 그것이 바로 보내심을 받은 것이다.


그것이 보내심이 아니라 먼 나라에 가야하고 삶의 터전을 떠나 험한 자리에 가야 보내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을 몰라서 그렇다. 육신으로 보내심 자체가 하나님께서 그 육신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라고 보내셨는데, 가장 근본 된 보내심은 외면하고 꼭 몸으로 어디 가야 보내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희롱하는 것일 뿐이다. 예수님께서 거룩한 자들을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심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진리가 되어 그 진리로 삶을 살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이 진리이신 이유와 육신을 가진 우리 인생의 목적과 하나님의 말씀(뜻)은 다 한 가지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대로 사는 삶,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삶, 곧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그 목적을 위하여 이 땅에 우리가 보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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