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다 이루었다고 하셨고, 그 일은 하나님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광스럽게(그 형상을 나타냄) 하는 것이라고 하셨으며, 그 영광은 창세 전에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가졌던 영광이라고 하셨다.


영광이라는 말이 ‘나타낸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지금도 어떤 시상식에서 그 영광스러움을 대변하는 수상 소감은 언제나 그 상을 받기까지 함께 한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하는 것이 관례다. 그 좋은 일을 나타나게 한 이들을 나타내고 자랑한다는 것이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도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때로 사람들은 존재의 하나님을 공로와 소유의 하나님으로 인식하여 나타내어도 어쨌든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을 영광이라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다는 것 역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나타내셨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원래 육신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하여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과 존재를 나타내어 하나님의 이미지를 전하였다면 그것이 사람의 존재 목적과 의미이며, 그것이 또한 하나님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 존재 목적을 바로 알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그것이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그 존재의 목적과 삶의 이유와 의미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 하나님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사람에게 알게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일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예수님도 하신다고 하신 것이다.(요 5:17)


하나님은 사람에게 사람 지으신 목적을 회복하게 하시려고 늘 일하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이 마쳐지는 자리에 이르면 안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 하나님이 사람 지으신 목적이 알기를 바라시며 그 뜻을 전하시는 일이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어 그 사람의 삶이 하나님의 정하신 의와 뜻 안에 거하게 되면 일하시는 목적이 이루어지므로 안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천지창조에 나오는 사람을 지으신다는 본질적인 의미이다.


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기 전부터 가지신 영광이다. 즉 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기 전에 먼저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그 이전에 이미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또 세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나타내실 뜻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 뜻이 있었으니 사람과 세상을 만드신 것이다. 전화 통화할 생각이 없는 사람이 전화기를 사지 않음이 그것이다.


그 영광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세상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예수님의 일이자 하나님의 일이며, 예수님의 영광이고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육신을 가진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미지를 나타내시려 한 뜻을 나타내셨으니 하나님의 일이 다 이루어진 것이요, 그 일로 인하여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이게 하시므로 나타났으니 하나님이 나타나는 영광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본성을 가졌고, 아버지의 뜻이 아들을 통하여 나타났으니 그 또한 아들의 영광인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디서 영광을 얻으셨는가 하는 것이다. 영광이 나타난 것이라면 어딘가에 나타나는 장소가 있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이것은 물리적,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자리, 존재적인 자리를 말한다.) 그곳은 다름이 아닌 세상이라는 것이다. 즉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자리라는 것이다. 왜 이것을 이야기하는가 하면 많은 신앙인들이 세상을 신앙에서 분리하려고 하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다른 곳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은 초인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가진 인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면 세상과 삶을 분리하여 하고 또 육신을 부정하게 여겨 금욕적인 삶을 사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두운 신앙인가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언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유리가 가진 이 육신으로 세상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 사람을 지으시기 전에 이미 가지신 하나님의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뜻이 사람의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나타나시니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아들이 나타났으니 아버지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영광은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도 아들이신 예수님의 영광도 모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뜻과 세상을 만드신 뜻이 사람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그 육신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면 세상이 그를 볼 때 아버지가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아버지의 뜻과 육신으로 나타난 것이 같은 성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가 육신의 삶으로 나타난 인생은 세상의 모든 것이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을 증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을 그 존재의 목적대로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풍기를 다스린다는 것은 선풍기를 내 맘대로 컴퓨터로 변형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 육신으로 나타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의와 뜻대로 순종하게 되는 것이기에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고,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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