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영원히 그것이 아니라면 오래 살려고 한다. 뭔가 혹은 어디에 머물려고 한다는 것은 그곳이 좋다는 것이고, 좋다는 것은 자기 목적이 충족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본질로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일어나는 자리에 머물고 싶고, 그것이 영원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혹 이 세상에 미련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한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스스로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오래 살려고 하고, 또 영원한 생명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을 본질로 보기 때문이다. 많은 신앙인들이 생각하는 영원한 삶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 몸이 다시 살아나서 예수님과 함께 그 몸으로 영원히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몸으로 사는 삶이 영원한 삶의 주체라는 것이고, 그것은 육신을 가진 이 삶의 터전인 눈에 보이는 세상을 세상과 세계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생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육신이 오래 오래 사는 것이나, 몸이 죽지 않고 영원불멸의 상태가 되는 것이나, 또 육신은 버리고 영만 영원히 사는 것이라는 등의 언급을 하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이 영생에 여러 말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생은 간단하다.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는 그 유일하신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믿는 것도 아니다. 알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아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있는 것이나 한번 본 적이 있는 것과 같이 아는 것이 아니다. 또한 말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안다>는 것은 자기와 상관이 있는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혼인하기 전에 천사가 와서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하니 마리아가 말하기는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즉 남자와 자신이 상관이 있는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씀하시는 <안다>라는 것은 그것이 나와 상관이 있고, 나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이 의심이 들지만 신념을 북돋우어가면서 믿는 그런 것도 아니다. 이것은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그렇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남자로 난 사람은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여자로 난 사람은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생명이 육신으로 나타나는 그런 상태가 바로 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은 몸이 영원히 사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일이 바로 자기의 삶이 되는 것,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자기 삶으로 표현되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영원하신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니 영원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와 상관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영원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짚고 갈 것은 <안다>는 것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때로 늘 친밀했던 사람에게도 ‘낯설다’하기도 하고 또 ‘너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왜 그런 말을 하는가 하면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본성이 낯설고 자기가 아는 것이 아닌 느낌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사람들이 어떤 기계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 예를 들어 컴퓨터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컴퓨터의 정체성과 목적 및 기능을 잘 안다는 것이다. 그냥 컴퓨터를 보고서 ‘이것이 컴퓨터’라고 하는 것이나, 컴퓨터는 대단한 연산 능력이 있어서 우주선의 궤도도 계산하고 사람과 바둑을 두어도 이기는 것이라고 아는 것이 컴퓨터를 아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을 아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것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정체성을 바로 아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이 블로그에서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있는 하나님의 정체성, 곧 존재의 하나님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존재의 하나님께 소유와 행위와 같이 육신의 어떠함에 대하여 바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존재의 하나님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너는 어떤 존재냐?’라고 물으실 때에,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삶의 목적과 의미와 내용으로 삼고 육신으로 그것을 표현하는 존재입니다.’라고 답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거하게 되고, 그런 사람이 바로 유일하신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의(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예수님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 본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게 되는 것,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사람이라는 형식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성품과 이미지와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다면, 당연히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영원한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는데 영원하지 않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영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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