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1-24) 보혜사 성령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복음 Date : 2016. 6. 1. 12:44 Writer : 김홍덕

(요한복음 16:1-24) 보혜사 성령



많은 신앙인들이 성령을 아는 것처럼 살지만 실상은 의심스럽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성령은 불치병을 고친다거나, 방언과 같은 은사를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것이 성령과 무관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성령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군인이 총을 쏜다고 총 쏘는 사람인가?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다. 그 일을 위하여 때로 총을 쏘는 것일 뿐이다.


성령은 신비한 능력의 상징이 아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각양의 은사들을 언급하고서 가장 마지막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모든 성령의 능력, 방언이나 병 고치는 것이나 예언이나 그 모든 것은 모두 다 사랑으로 수렴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람들이 성령의 정체를 기적과 신비한 능력으로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이유 혹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유가 사람이 육신으로 살면서 기대하는 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의 능력 이상으로 도우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삶과 세상의 본질을 눈에 보이는 육신의 삶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성령을 신비한 능력과 연관해서 생각하는 것은 신앙의 근간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성령의 능력은 신비하다. 때로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불치병이 낫거나 또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거나 한다. 마치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바다 위를 걸으신 것 같이.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은 군인에게 있어 총과 같다. 군인의 임무가 총을 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는 것이듯, 성령의 역사하심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사람이 자기의 의로 살다가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그 뜻을 삶의 목적과 의미로 순종하며 살게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성령의 책무고 기적 중의 기적인 것이다.


사람은 상대가 최면 상태나 아니면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자신의 뜻에 따른 것을 나중에 알면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다.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만큼 힘든 것은 없다. 사람의 마음은 그 안에서 스스로 인정되고 우러날 때 진심이 되고, 그렇게 사람의 관계가 이루어질 때 온전한 것이 된다. 그것이 아니면 다 거짓일 뿐 아니라 기만과 배신일 뿐이다.


성령의 일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일이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림과 같고, 여자가 혼인하여 남자의 유전자를 몸에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늘 씨 뿌리는 비유나 하나님 아버지가 농부라는 말씀이 나오고, 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여자와 같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 사람 안에 들어온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바꾸어내는 생명이 되게 하시는 일이 성령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셨다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생명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 잉태함은 결국 뿌려진 씨의 생명 그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즉 하나님 말씀 자체가 가진 생명이 싹이 나서 씨가 심긴 땅의 흙(육신의 삶)을 열매(그리스도의 생명)로 바꾸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과 하나님은 같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리고 성자 곧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렇게 육신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의와 뜻(말씀)이 자기 생명(삶의 목적과 의미)이 되는 것을 거듭난 생명, 구원 받은 생명 그리고 영원한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땅에 씨를 심어 과실이 열리는 것을 생각해보면 과실의 모든 것은 땅의 것이다. 땅에 있는 물(하늘에서 내린 비)과 양분이 하늘의 빛과 어우러져서 과실이 되는 것이다. 물질적으로 보면(눈에 보이는 세상으로 보면) 열매는 결국 흙이다. 하지만 그 열매의 이름 곧 정체성은 흙이 아니라 뿌려진 씨의 이름을 가진다. 사과 씨를 뿌렸으면 사과가, 복숭아씨를 뿌렸으면 복숭아가 되는 것이다. 그것과 같이 흙으로 지어진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서 그것이 생명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존재의 이름인 그리스도(a christ)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성령의 일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하여 필요하면 기적도 또 십자가도 지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성령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다가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인 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가시지 않았다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었을 것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한 알의 씨가 되셨기 때문이다. 


즉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그 모습이 바로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되는 씨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모습과 일이 사람에게 땅에 씨가 심기듯 들어오면 그 씨가 잉태되어 생명이 되게 하시는 일이 성령의 일이고, 그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모습을 자기 안에 받아들인, 즉 그것이 자기 정체성이라고 받아들인 사람이 그리스도로 거듭난 생명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일이고 예수님께서 보내신다고 하신 성령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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