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예수님과 또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사실 예수님의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진 선과 악의 기준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어떤 것을 죄로 여기는 가장 기본 바탕은 ‘내가 생각하는 선함’대로 되지 않음 때문이다. 그게 아니면 굳이 어떤 일이나 다른 사람에게 죄를 정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삶에 그대로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죄로 인정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누군가는 그 일에 대하여 선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아들이시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정죄할 것은 하나도 없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기준으로 예수님을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꼴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라는 조롱으로 대변되는 사람들이 가진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기준이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든 것이다. 사람들이 가진 기준으로 볼 때 예수님은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아들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안에 어떤 것은 선으로 어떤 것은 악으로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데, 그 기준 앞에서 사람들이 그 기준을 위배하면 정죄하는 것이다. 치약을 중가부터 짜면 안 된다는 기준을 가진 사람 앞에서 치약을 중간부터 짜서 사용하면 반드시 욕을 먹는다. 정죄를 당한다는 것이다. 이 정죄함의 시작은 치약을 중간부터 짜는 것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치약을 중간부터 짜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기준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기준 곧 법이 있어야 죄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죄인이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정죄하는 기준과 법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법이 제정되지 않는 시절의 행동은 아무리 눈살 찌푸리는 일이라도 심판을 받지 않는다. 법이 없으니 죄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의 정죄도 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법이 세상이 있어서 그 법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그 법은 <하나님의 아들은 어떻다.>고 하는 법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래야 하고, 이럴 것이다.’라는 기준이 예수님을 정죄해서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그 법으로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죽인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만드신 이 육신을 가진 인생이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존재, 곧 아들을 삼기 위한 존재라는 것을 전하시면서 그것만 믿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셨는데, 세상이 가진 기준은 하나님의 아들은 율법도 다 지켜내야 하고(돌을 떡으로 만들고), 육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능력을 가져야(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도 죽지 않고), 또 세상의 모든 영광을 가진 존재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이 되어야 하고, 기적이 있어야 증거를 삼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하고, 세상의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고 하니 세상이 자신들의 법으로 심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은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하나님 만드신 세상에서 하나님과 무관하게 스스로 가진 선과 악에 대한 기준 때문이다. 존재의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행위를 기준으로 선과 악을 심판하는 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만들지도 않았고, 자신들의 존재의 목적이나 이유를 가지지도 않은 다른 사람을 자기 기준을 가지고 그 행동을 심판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이다. 그것이 선악과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도 그렇다. ‘술 마시면(행동) 죄다.’, ‘성경을 봐야 한다.(행동)’, 십일조를 해야 한다,(소유와 공로)‘와 같이 교회가 교인들에게 가르치는 모든 교리가 다 행동(Do)으로 업적을 쌓거나 어떤 선한 기준을 통과하는 것과, 세상의 것 중에서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드려야 하는지(Have)를 이야기 한다.’ ‘이단이 만든 제품을 가지면 안 된다.’와 같은 것과, ‘하나님께 어떤 것(세상의 것)은 드리거나 가져와도 되고 또 어떤 것은 안 된다.’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런 모든 것은 다 세상의 심판과 같은 것이다. 세상의 가치관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먹은 티를 제대로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세상의 가치관,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가 하나님처럼 어떤 일에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서 심판하는 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죄가 되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 죄는 기준이 있음으로 죄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의 정체성을 밝히 보이셨기 때문에 사람이 자기가 창조하지도 않은 세상에 대하여 자기의 선과악의 기준으로 마음대로 심판함이 사람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사는 모든 사람과 세상의 가치관은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 것이다.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요 15:22)

내가 아무도 못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면 저희가 죄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및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요 15:24)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진리 되심은 성령이 오심으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밝아진 사람, 곧 예수님께서 보이신 사람의 정체성인 하나님께서 그 형상을 나타내시려고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이 자기 삶의 목적이 되어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과 세상을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됨으로 확증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과 같이 사람의 행동과 소유를 사람이 가진 선과 악의 기준으로 심판하지 않고, 존재의 신이신 하나님의 법과 기준으로 세상을 심판할 법이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이고, 또 그렇게 되었기에, 세상의 가치관을 가진 이들은 세상에 증거된 이 예수님의 법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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