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5) 빛과 생명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복음 Date : 2015. 10. 29. 14:11 Writer : 김홍덕

빛은 인식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가장 먼저 만드신 것이 <빛>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중에서 임의로 빛을 처음 선택하셨다는 것이 아니다. 빛이 있어야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는 생명도 마찬가지다. 생명이 있어야 생명에게 어떤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빛은 그런 의미에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것, 깨닫는 것 그것이 시작이고 그것이 빛이다. 생명도 생명이 되어야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태초다.


글을 모르면 문맹이라고 한다. 문자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자의 존재 목적이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문자를 통하여 사람의 생각과 뜻을 전하는 문자의 존재 목적이 글자를 모르는 사람에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두움이다. 즉 어두움은 존재 목적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빛이 세상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존재의 목적을 알게 하시려 하나 문맹이 글자를 읽지 못하듯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하여 육신으로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이 사람에게 의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어두움인 것이다.


빛이 있다는 것은 어떤 시작이 있다는 것이다. 빛이 없으면 어떤 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즉 인식과 깨달음이 없이 어떤 세계가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확률에 대한 인식이 없는데 통계학을 시작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신 뜻, 곧 사람의 존재 목적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이 없다면 시작되지 않는다. 즉 태초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빛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을 알게 하시는 인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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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있어야 살아 있는 생명


요한 사도는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바로 사람들의 빛이라고 했다(요 1:4) 사실 이런 말씀들을 대할 때에 빛과 생명은 엄청나게 좋은 것이고 예수님이니까 그렇게 말한다는 식으로 볼 것이 아니다. 왜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으며, 그 생명이 왜 사람들에게 빛이 되는지, 그것이 궁금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궁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은혜일 수 있다. 그것이 궁금하다는 것은 적어도 예수 믿어서 이 땅을 사는 육신의 삶에 육신을 평안하게 하는 복 받고자 하는 것을 신앙의 목적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목적으로 예수 믿는 사람은 아마 왜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는지, 그리고 그 생명이 왜 빛이 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싶기도 하다.


생명에 대한 정의는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있지만 일정하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생명이 있는 것, 곧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정의는 너무 분명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목적대로 있는 것은 생명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산에 있는 바위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표현하고 있으면 산 것이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목적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면 펄펄 날아도 죽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것은 사람이 필요해서다. 괜스레 사람 만들어서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 들어주면서 ‘나는 니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어!’라는 만족을 위하여 만드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그 존재를 알 수 없다. 보이지도 않고 그림자도 없는데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능력,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을 표현할 형식을 만드신 것이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도 절실한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피조물은 다 하나님의 그 필요와 목적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피조물도 그것을 벗어나면 다 죄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의와 뜻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다. 즉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되신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이라는 또 세상이라는 형식으로 자신을 표현하시겠다고 하신 것은 세상과 사람의 존재 이전부터 있었던 계획이다. 태초 이전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도 사람도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것이고, 아브라함 보다 먼저 계신 분이신 것이다.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다는 그 뜻이 모든 것 보다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므로 생명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 그 생명이 사람 안에 있어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생명이 있는 존재가 되려고 한다면 당연히 예수님과 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말씀,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육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육신이 영이신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자기 원하는 것을 잘 얻어내는 것이 살아 있는 생명이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생명이 사람들의 빛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어떻게 되어야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이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람들의 빛인 것이다. 빛이 비취므로 사람들이 모든 물건을 인식하고, 또한 각양의 물건들의 존재 목적이 이해되고 또 목적대로 사용되어서 사람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있어 빛이 비췸과 같이 자신의 존재 목적과 의미를 모르는 어두움에서 어떻게 생명이 있는 존재가 될 것인지를 보여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들의 빛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먼저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사람이야 자신이 육신을 입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하나님은 이 육신이 하나님을 표현할 존재라는 것을 예수님을 육신으로 보내심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육신을 가졌다면 누구라도 예수님과 같이 그 안에 생명이 있는 존재, 하나님이 살아 있다고 하는 존재, 하나님의 의와 말씀이 형식이 된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심으로 사람들에게 빛을 비취신 것이다.


위에서 어두움은 목적과 의미를 인식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주신 목적, 삶의 의미를 모르고 있는 상태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세상의 어두움이고 죽은 인생이라는 의미다. 사람이 그런 어두움에 있었던 것은 자신이 그런 상태라는 것을 비춰줄 빛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오신 것이다. 이 육신의 존재 이유와 삶의 의미를 보이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고서 자신의 존재 목적과 의미를 깨닫게 되면, 빛이 비취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는 것은 당연히 회복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든 존재 목적과 삶의 의미를 모르다가 그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회복이고 구원인 것이다. 예수님은 그래서 세상의 빛인 것이다. 사람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목적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초에 빛이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이다. 그 빛이 있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다. 


산의 바위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드신 목적을 아는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존재로 보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바위도 산 것이 되는 것이다. 존재의 목적이 회복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하나님의 존재 목적 안에서 의미가 있어지는 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아들이 나오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 곧 자신의 존재의 목적을 회복한 사람에게 세상의 모든 만물의 하나님의 표현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것이 모든 만물의 목적인데 그 목적을 회복시켜 주는 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 있는 안목과 생명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회복되기 때문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사람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사람과 같은 육신으로 오심으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요 생명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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