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18) 말씀이 육신이 되심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요한복음 Date : 2015. 11. 2. 19:02 Writer : 김홍덕

성경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건을 꼽는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신 그 사건의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이 말씀, <말씀이 육신이 되어>에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을 단순하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라고 하면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된다.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심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으로 잉태하심이고, 이것이 구원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람의 존재 목적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2-14)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과 다르게 예수님을 이해하고 있거나, 예수님이 2,000년 전에 오셔서 정말로 기적을 일으켰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예수님이 오신 것을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 너무 중요한 것이다. 정말로.


혈통이나 육정은 일반적인 사람의 탄생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렇게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이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이 육정이나 혈통으로 난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에 의하여 난 자, 곧 하나님으로 인하여 새로운 삶이 시작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의미가 하나님의 의를 표현해 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 삶이 있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인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육신을 가진 삶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이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신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같은 육신을 가졌다면 누구라도 예수님과 같아질 수 있다, 아니 같아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요한 사도의 말씀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하셨다. 복수다. 그렇다는 것은 단 한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 한 분만이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삶이 된 사람은 누구라도 다 하나님의 자녀요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이다.


자녀는 아버지의 의가 어머니의 몸에서 잉태되어 난 자다. 하나님의 자녀란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 앞에서 여자와 같은 자기 인생을 통해서 자녀와 같이 자기 생명 안에서 삶으로 표현해 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여자의 몸 안에서 자녀가 태어나듯이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것 역시 그 사람 안에서 밖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육신의 행동이 성경을 지킨다고 되는 것이라, 그 사람의 행동과 삶이 성경대로 살 수밖에 없도록 하는 생명이 그 사람의 심령 안에 있는 이유로 그것이 표현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자녀가 없으면 결혼한 남녀는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녀가 결혼해서 하나가 되는 것은 자녀로 인함이다. 남자의 의(성씨)가 여자의 육신을 통해서 나타난 존재가 바로 자녀이다. 즉 자녀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된 것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도 하나님의 의가 육신의 삶으로 나온 사람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을 그렇게 살아내는 생명이 사람 안에 없으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 역시 같은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이 삶으로 표현될 때 아들이 태어난 것과 같이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증거하고,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도 증명하듯이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그 생명으로 인한 삶이 증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을 본 사람은 또 다시 그 마음 안에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런 삶을 살게 되는 생명이 잉태되어 그 사람 역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어 삶으로 나타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영원하기에 영원한 생명인 것이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을 보니 자기 안에서 예수님이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요한 사도도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가 자기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듯 생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유일(독생한)한 분이심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그렇게 되어서 자기 안에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과 같은 생명과 법이 자기 안에서 생명과 법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임을 아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들들이 자신이 아들을 얻을 때에 아버지가 아들 얻은 법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 오늘 나의 사건이 아니라면 더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아직 생명이 삶을 주관하는 법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자기 맘대로 성경을 보면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생아가 되는 것이다. 오늘 이 요한복음의 말씀을 대하는 사람, 그 사람 안에 말씀이 육신이 되는 법이 생명이 되면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과,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과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법이라는 것이 자기 안에 열릴 것이다.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새롭게 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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