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소더스>에 나타난 타협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4. 12. 8. 09:40 Writer : 김홍덕

어제 저녁 아내와 큰 아들과 함께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을 보고 왔다. 어린시절 TV에서 본 <십계>를 생각하면서 발달된 기술이 보여줄 화려한 그래픽에 대한 기대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매우 불편하게 흘러갔다. 상영시간 내내 지난 번 <노아>를 생각하게도 만들었지만 이내 그것과는 또 다른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노아는 성경에 대한 완전히 다른 해석이었다면, 엑소더스는 성경을 논리적 해석으로 불신과 신앙과의 괴리를 연결하려 했다.





영화는 출애굽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뭐 굳이 영화의 내용을 해석해 보면 히브리 백성에 대한 왕과 신의 이견 차이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을 자신의 종으로 노예로 여기는 왕과 자신의 백성으로 여기는 신의 관점 차이를 보여주려 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내내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기대(?), 그러니까 내가 아는 성경의 전재와 얼마나 일치하게 할 것인지를 검증하듯 보는 마음은 어쩌면 나의 선입관이라고 치부한다 해도 이 영화가 가진 문제는 심각하다고 본다. 어쩌면 노아보다 더 문제가 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있어 가장 하나님께 도전하는 생각이나 신앙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신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신이 가진 관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못 믿겠다!"라고 하거나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이 정직한 마음이다. 그건 불신일수는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도전은 아니기 때문이다.


믿어지지 않으면  못 믿겠다 해야지 믿기지 않는 말씀을 자신이 사람으로 살면서 형성된 가치관과 지식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하나님에 대한 반항이고 도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진 의와 그것을 표현한 말씀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기 때문이다.


신앙에 있어 가장 타락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기본적으로 사람이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생각을 표현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존재 목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불신이 질그릇으로서 엎어져서 아무 것도 담으려 하지 않는 것이라면, 타협은 자기 맘대로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주권을 가지려 하는 것이고, 자신이 스스로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사고를 바탕으로 그릇에 담기려는 것을 판단하고 자신의 정체와 연결하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는 삶의 주권을 자신에게 두고 있는 생각이다. 즉 자신이 가진 사상과 지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자기 주도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또 합리적이라도 하나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도전이다.


성경을 보는 관점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가감하는 것이다. 가감을 하는 근원은 자기 지식으로 볼 때 이해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의 주권을 자신에게 두고 있는 생각이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하나님과의 주권을 다투는 것이다. 이는 믿지 않는 것 보다 죄라면 더 큰 죄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오르셨던 기록을 마태복음 17장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을 본 베드로가 좋아서 초막 셋을 짖고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있자고 했다. 하지만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는 소리에 깨어 보니 예수님만 보였다고 했다.


즉, 하나님을 믿는 것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 그것에는 어떤 것도 더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심지어 모세와 엘리야라 할 찌라도.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도 엘리야의 능력도 다 예수님이 사람에게 보여주고자 하신 하나님의 뜻 안에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 하늘과 땅은 물론이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으로 비롯된 사상과 철학과 과학과 문학과 예의와 모든 것이 바라는 유일한 바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로마서 8장에서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대하는 가장 온전하고 정직한 마음은 믿어지면 믿는다 할 것이고 믿어지지 않으면 못 믿겠다고 할 것이지, 믿어지지 않고 의심이 되는 것을 자신이나 사회나 세상이 가진 사상과 지식으로 합리적인 해석을 유도하는 것이 가장 믿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다.


영화 <엑소더스>는 성경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성경에 대하여 시도하는 주관적 시도가 얼마나 하나님의 생각에 도전하는 것인지를 알게 했다. 이는 영화가 성경과 다르게 표현해 가는 것에 대한 불편함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런 도전은 이제 트랜드가 된 것 같다. 예전 <십계>나 <벤허>과 같은 영화에 비하여 시간적 거리가 좀 있지만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를 거쳐서 <노아> 그리고 <엑소더스>까지의 과정을 보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는 관점을 조금씩 조금씩 교정해 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미혹>이라는 생각에 불편한 잔상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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