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거처가 되시는 하나님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4. 11. 3. 17:05 Writer : 김홍덕

모세의 유일한 시편, 시편 90편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거처가 되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처소가 되신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된다는 것과는 좀 반대가 되는 개념 같아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같은 개념이다. 거처(dwelling place)는 거하는 곳, 주거하는 곳과 같은 의미이다. 즉 한마디로 집이다. 집이라는 곳은 안식하는 곳, 수고하고 쉴 수 있는 안식과 행복의 뿌리가 되는 곳을 말한다. 그곳을 거처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거처, 곧 안식하는 곳이 되고,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시고 안식하셨다는 것과 같은 말씀이다.


안식할 수 있는 거처라는 곳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제자리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고향에서 느끼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거처가 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 사람이 가는 것이 자기 자리에 돌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기에 그것에 안식이 있다는 말씀이다.


또한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을 표현하시기 위하여 사람을 그릇과 같이 지으셨기에 사람 안에서 사람의 성품과 인격으로 자리하심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게 되면 하나님 또한 사람으로 인하여 안식하시게 되는 것이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처소와 성전의 개념은 공간에 관한 개념이 아니다. 그렇다고 공간으로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교회당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공간적 개념으로 본다면 무소부재(계신 곳이 없는)하신 분이니 모든 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뜻과 의미는 목적에 대한 자기 자리이다. 한 마디로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을 말한다. 식칼이 있어야 할 자리는 부엌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요리에 필요한 자료를 자르는 목적에 부합한 상태로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자기 자리에 있는 것이다.


만약에 식칼이 부엌에서 식재료를 잘라 요리하는 것이 아닌 것에 위험하게 사용된다면 그것은 자리를 벗어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칼도, 또한 칼의 주인도 서로에게 안식할 수 없게 된다. 칼은 자기 자리를 벗어난 것으로 인하여 원래 만들어진 목적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폐기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에서 벗어나면 거처를 떠난 것이 된다. 이것은 공간 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 사람 안에 거하시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에 있으므로 이 또한 만족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그릇으로서 또한 성전으로서 그 안에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가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거처가 된다는 말씀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거처가 된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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