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갑주는 악한 것을 이기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악은 세상의 주관자들과 하늘의 영들에 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것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정욕으로 구하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을 악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임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은 하나님의 의도와 상반된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맞서기 위하여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진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허리띠는 힘의 상징입니다. 진리는 악에게 맞서고 이기는 것에 있어 코어(core)라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모든 힘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곧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진리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신갑주의 시작인 진리의 허리띠를 띠었다고 한다면 정말로 자유로운가를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막연히 “진리로 띠를 띠십시오!” 외치기만 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진리로 해석되기를 바라면서 마구 외칠 말씀이 아닙니다.


핵심적으로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하셨으니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는 것이 우리 인생을 자유롭게 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자유는 육신이 종으로 구속된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추구하는 자는 돈 앞에 자유롭지 않고, 권력을 추구하는 자는 권력 앞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와서 광야를 지날 때 불기둥이나 구름기둥이 일어나면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벗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랬고, 광야의 기후나 환경이 또한 그랬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운동선수에게 호각소리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신호였습니다. 신호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해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 아래는 진정한 자유가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성경말씀이라는 신호, 목사의 의견이라는 신호에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있습니다. “목사님 이것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라는 질문은 참 경건한 것 같지만 그것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미 천지를 창조하실 때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에게 바라고 뜻하시는 궁극의 뜻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말씀을 준행하는 것과 같은 수많은 말씀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 뜻 그 안에 속한 것입니다. 나무의 유전자라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라면 율법과 규례는 가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게 분명하게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밝히셨음에도 사람들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겠다고 하고, 어떤 행동을 앞두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려고 하는 것은 먼저 밝히신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사실이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신호를 기다립니다. 자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진리의 허리띠를 띨 방법이 없습니다. 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진리라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본성을 좇아 살아갑니다. 자기 밖에서 어떤 신호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니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없어지고 밟는 모든 곳이 그들의 땅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신호가 없는 자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실 때 성전의 휘장이 우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예식과 규례의 신호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자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진리이시고 진리가 있으면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자기 밖에 있는 어떤 신호나 뜻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이끄는 본성대로 살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시간, 어떤 조건에서 의문을 가져오는 착각이나 망상이나 최면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살면서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아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서 진리의 띠를 띤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서 그 생명이 서 있는 장성한 생명이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더 이상 자기 밖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리스도라는 인생의 존재 목적의 참 진리가 자기 본성이 된 사람, 그리고 그 생명이 장성하여 서서 그 생명의 본성을 좇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진리의 허리띠를 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진리인 것은 존재의 목적과 존재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때 악을 대적할 수 있는 중심이 잡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체성이라는 사람의 존재 목적과 자신이 일치가 된 진리가 자기  중심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전신갑주의 시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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