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3:14-21) 바울 사도의 간구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에베소서 Date : 2019. 6. 13. 05:00 Writer : 김홍덕

에베소서 3장 후반부에는 성도들을 향한 바울 사도의 간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간구에는 아주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도 그렇듯 이 간구에는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간구의 내용이 간구하는 사람 안에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임하기 바라는 은혜가 예수님과 바울 사도 안에 있는 것을 간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명한 주기도문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을 구하든 들어 주시겠다고 하심도 압니다. 특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은 이제 하나의 주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마감하지 않으면 기도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서양국가에서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동서양에 따라 다른 것도 아닐 텐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은 특히 크게 왜곡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주문만 외우면 그 구하는 내용이 무엇이든 들어 주시겠다는 것으로 해석되고 가르치며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무엇을 기도할 것인지를 명확한 한계를 정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 그러니까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늘의 뜻인 하나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자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 땅이자 흙으로 지음 받은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구하라는 분명한 구분과 한계가 정해진 말씀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시험 치는 것, 선교사로 가는 것, 목사가 되려 하는 것과 같은 것을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공중 나는 새까지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다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라는 정체성, 곧 인생의 존재 목적만 자기 안에서 이루어지면 그 목적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에 필요한 것은 목적을 정하신 이가 다 주시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사면 당연히 기름을 넣듯.


이와 같이 지금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기도와 간구는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이름 밖에 있는 것들입니다. 자신들이 교회에 가서 혹은 기도원이든 집이든 기도한 내용을 반추해 본다면 자신들이 천부께서 필요함을 다 아시는 것들만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사실 그것을 알면 아주 양심적인 것이고, 그것이 시인되면 자기 죄를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지만 아마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히 그런 간구가 바울 사도의 간구(겟세마네 동산의 간구도 궤를 같이함)와 다른 것은 바울 사도는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성도들에게 이루어지기를 구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구하는 것이 더 충만하기를 구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자기 안에 예수님의 이름은 없고, 단지 예수님의 이름을 힙 입어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얻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기를…’라고 기도하는 것은 바울 사도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가 계신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무릎을 꿇고 간구할 정도로 좋은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구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 안에 그리스도의 장성함이 충만해질수록 그 영광스러움을 체휼하고 있기에 또한 성도들이 그렇게 되기를 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간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기도가 자기 안에 있는 것인지 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시험의 합격을 기도하는 사람은 합격증이 없으니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 안에 없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기도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가 아니고, 예수님께서 그런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하늘의 뜻, 곧 인생을 창조하신 목적이 내 안에서 생명이 되는 것 그것을 구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구한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 예수님의 이름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안에 생명이 되면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기도가 쉼이 없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쉬지 않고 기도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모은 인생이 그리스도의 정체성인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만 관심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먼저 ‘하나님의 의’ 안에 속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명이 되면 숨 쉬는 동안 기도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의 모든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들어주신다는 것만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기 안에 깨달아진 바가 없다면 미안하지만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구원을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 그리스도와 같은 생명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흔히들 중보라고 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간구는 먼저 자기 안에 구하는 바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없는 것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라는 행위를 드리고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겠다는 꼼수 같은 거래일뿐입니다. 또 자기 안에 없는 것이 상대에게 좋은 것인지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좋을 것이라는 가치관도 선악의 기준에 선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성도들을 위한 바울 사도의 간구는 바울 사도 그 자신 안에 이미 충만하고, 그 충만함이 자신에게 큰 영광과 은혜로 늘 함께 하기에 성도들도 그렇게 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영원하면 자신도 영원함 안에 있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려면 먼저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과 그 풍성함,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인 정체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구하는 것이 기도며 간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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