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3:1-13) 교회로 말미암아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에베소서 Date : 2019. 6. 7. 14:31 Writer : 김홍덕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닙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는 것’과 ‘예수를 믿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 차이는 근원적으로 사람에게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누구냐의 문제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 자체가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또 다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 만남 자체가 교회가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진정한 교회에 가더라도 그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대한민국의 이념, 곧 의를 가진 대한민국인은 어느 나라에 가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시인하고 그것에 순종하여 사는 사람이면 삶의 모양이나 혈통이나 능력이 어떠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또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누구를 그리스도라고 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것을 두고 크게 칭찬하신 것은 예수님을 잘 알아보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자신과 동일한 육신을 가진 이를 하나님의 아들로 또 메시아로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수님 칭찬의 본질인 것입니다. 


육신을 가진 인생을 그리스도로 인정한다는 것은 육신을 가진 존재가 메시아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한계를 벗어난 능력을 가진 히어로와 영웅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것에 반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이유에도 반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육신인 자신이 인생이 겪는 문제를 육신을 초월한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사람들이 가진 메시아의 개념과 상반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육신을 부정하고 육신의 능력 이상을 바랍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거기서 내려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본질을 눈에 보이는 육신에 두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육신을 본질로 보는 사람들은 이방인의 구분도 육체의 할례를 기준으로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도 육신의 형편으로 봅니다. 사람의 선함과 악함도 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늘 육신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빌어 육신의 일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육신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영광을 얻으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영광을 영광으로 여기실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아닙니다. 그런 신앙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신앙 정체성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 육신을 세상의 가치관 앞에 죄인으로 내어 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란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요 구원자인데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의 성품이 그 사람의 육신의 수고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성품과 형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신다는 것이 하나님 영광(‘나타나다’라는 의미)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신을 주신 이유가 세상의 가치관 앞에서 육신이 종이 되고 죄인이 되듯 소비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을 위함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존재 목적이자 삶의 이유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리스도를 나누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구성원의 육신의 삶으로 표현되니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이 나타나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신학이다 뭐다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공부해야 알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짓거리를 하고 있다면 이미 교회가 아님을 자주 언급하였습니다.


교회로 말미암아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경륜과 비밀과 지혜가 나타난다는 것은 교회가 그것을 연구하거나 세련되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하나님 창조의 뜻과 경륜과 비밀과 지혜가 나타나는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감출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밝히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뜻대로 사는 사람이 모여기만 하면 하나님의 경륜과 비밀과 지혜를 교회로 말미암아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존재인 그리스도로서 살아가고, 그 그리스도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었다면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만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창세 전 부터 예정하신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온전히 나타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서 자신도 예수님과 같이 육신을 세상 가치관 앞에 드림으로 십자가를 지듯 육신을 소비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며 사는 것을 자신 삶의 목적으로 삼기에 그 순종을 성령께서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시므로 그 본성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로 예정된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당연히 지혜가 나타나는 예정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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