얍복강의 야곱과 겟세마네의 예수님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6. 3. 25. 18:36 Writer : 김홍덕

야곱이 얍복강을 건너 형 에서를 만나기 전에 돌베개를 하고 자다가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을 하는 장면은 유명한 말씀이다.(찬송가 가사에도 나온다.) 야곱은 14년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수고하여 얻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세 떼로 나누어 형 에서에게 보내고 자신만 남아서 한 사람과 싸우게 된다.


사람이 싸움에 임하게 되는 것은 어떤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 싸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사람과 싸웠는데 그 싸움이 끝나고서 야곱이 그 땅의 이름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싸움은 사람과 하고, 결론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분명 야곱이 상대에게 맞아 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결론은 야곱이 이긴 싸움이 되었다는 것도 상식적이진 않다.


지금 야곱의 형편은 이렇다. 장자의 명분,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그 정체성의 자리로 가려는데, 그곳에 가려니 육신이 죽게 생겼다고 느끼고 있는 그런 상황이다. 그렇다는 것은 상대는 어떤지 몰라도 야곱은 지금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걸린 상황이라는 것이다. 즉 야곱에게는 이 싸움이 자신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라는 것이고, 그 문제를 가지고 싸웠다는 것은 그 상대가 야곱의 삼과 죽음에 대하여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야곱에게 있어 이 싸움은, 한편으로는 장자의 명분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가야하는 장자의 명분으로 인한 자기 삶의 여정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육신으로 일구어낸 모든 것과 심지어 자기 목숨을 장자의 명분으로 인한 여정 때문에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즉 야곱에게 있어 이 싸움은 육신의 것을 선택하여 살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장자의 명분을 선택하므로 죽을 것이냐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가진 것을 하나씩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형에게 다 보내고 마지막으로 자신만 남았지만,  그 육신마저 하나님이 자기 조상에게 지시한 땅으로 가면 죽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상황으로 인하여 마음에 일어나는 싸움, 그것이 바로 야곱의 싸움이다. 야곱이 에서에게로 가면서 자기가 가진 것을 다 내려놓은 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시는 것과 같은 것이라면 이 얍복강에서의 싸움은 겟세마네의 기도와 같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야곱이 에서에게로 돌아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가심

 장자의 명분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지시한 땅, 

 곧 사람의 정체성의 자리로 돌아가려 함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십자가로 가심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형 에서에게 돌아감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심

 장자의 명분을 빼앗긴 형이 야곱을 죽이려 함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 함

 얍복강에서 어떤 사람과 싸워서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졌지만 (하나님을)이긴 자가 됨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으나, 결국은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

 자신이 에서에게 바친 모든 것이 다시 회복 됨

 부활하심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고 우리의 사건이며 우리 신앙의 여정이고 우리의 정체성이며 우리 삶의 목적이고 의미며 본질에 관한 말씀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알고 있다 보니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대로 살면 자기 눈에 보이는 것, 본질이 아닌데 본질로 스스로 귀하게 여겼던 것을 잃을까 늘 걱정하고 마음 안에서 다툰다. 사람이 남이 자신에게 뭔가를 부탁하고 시키는 것조차 짜증내는 것은 그런 것 하나에 까지 자기의 편리와 가치를 빼앗기지 않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더욱이 소위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하나님을 심히 기만하는 것이 있다. 아니 많다. ‘하나님 믿는 사람이 가난하게 살아서 되겠습니까? 그러니 저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를 가난에서 구하여 주십시오!’라는 기도와 같은 것이다. 그것을 타락한 교회들이 상용화버전으로 바꾼 것이 바로 “세상에서 성공하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외치는 것이다. 본질을 얻으러 가는 여정이라면 눈에 보이는 본질이 아닌데 본질로 여기는 것을 다 버리고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온전한 것이지, 하나님의 일을 하려 하니 뭐 좀 달라고 하는 것은 다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창조의 목적 그 하나를 지키기 위함이라면 가진 모든 것을 다 자신을 죽이려는 에서에게 바치는 것과 같이, 또 십자가에 오르기 전에 모두 벗어버리신 주님과 같이 해야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교회를 위해서는 적어도 이것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면서 어떤 것을 주장하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일 뿐, 믿음도 십자가의 삶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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