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보편성과 순수성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4. 4. 14. 16:25 Writer : 김홍덕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고 할 때, 국가가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다. <국가 기술 개발 사업>이라는 것인데, 기술을 개발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부담하는 것인데, 세금을 사용하는 것이다 보니 기업의 기술 개발 계획을 심사하게 된다.


그 평가 기준을 크게 보면 <기술성>과 <경제성>이다. 다시 말하면 기술의 우수성과 가능성 그리고 독창성을 보는 것과, 제품이 완성되었을 때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시장성과 사용 편리성 등을 가지고 있는지 보는 것이다. 이를 신앙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신앙의 순수성과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순도를 논하라면 율법 주의나 영지 주의 그리고 세상의 가치관이 신앙과 결합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제한이 없어야 하는 보편성을 말하는 것이다.


순도가 지나치면 율법주의나 광신도가 된다. 삶의 전부가 신앙에만 집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신앙이 보편적으로 흘러 간다면 이는 타락한 신앙이 된다. 세상의 법이나 관습이 신앙과 섞이게 되면 보편성이 떨어진다.



     



즉 금방 생각해 보면 신앙의 순도와 보편성은 양극성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가 소흘하게 되는 모순과 같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이것이 중요한 관점인 것은 신앙의 모양이 이 둘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게 되면 광신도가 되거나 아니면 타락한 신앙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관점이다. 신앙은 순도가 높을수록 보편성이 넓어진다. 다시 말해서 신앙의 순도가 높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수용하는 역량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교회들이 이 문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신앙의 순도가 높고 순수하다는 것은 그 만큼 인간 본연의 모습에 더 나아갔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더 아담 같고, 더 예수 그리스도와 같다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의 구원자이므로 모든 인간의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담은 최초의 인간 즉 인간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요즘 말로 한다면 <줄기세포>와 같은 것이다. 신체의 어떤 장기로도 성장할 수 있는 세포인 줄기 세포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간이 그와 같이 될 수 있는 공통 분모를 가지신 분이라는 것이다.


즉, 이것은 사람이기만 하면 누구나 예수를 믿을 수 있고, 예수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이만한 보편성이 어디에 있겠는가? 즉 예수를 잘 믿을수록 더 뛰어난 보편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을수록 예수 믿는 것에 도움이 되고, 교회에 봉사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내어야만 신앙이 좋다고 한다면 보편성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도, 돈이 많아도, 또한 때로는 구두쇠 같아도, 또 신앙이 없어도 그런 자신의 조건이나 형편이 더 존중 받아야 한다거나, 그래야만 예수를 잘 믿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냥 그렇다는 그 자체는 절대로 신앙의 제한적 요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구성원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의 문제이다. 교회는 정말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부터, 신앙의 정도를 떠나 육신이 부유한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다 동일한 조건에서 신앙을 누리고 평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정의 많은 가구나 도구 그리고 비품들은 그 사용 빈도나 중요도에 따라 여러 등급이 있겠지만, 그 어느 것도 필요할 때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정에 많이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소화기를 본다면, 평소의 생활에서 보면 적당히 두기도 그렇고, 또 주기적으로 흔들어 주는 등 삶에는 유익이 되지 않아 보이지만 화재가 난다면 이는 절대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교회도 신앙도 그런 것이다. 아주 신앙이 없는 사람도 평안할 수 있어야 하고, 아주 충성스런 사람도 평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순도고 보편성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더 신앙이 없는 사람도, 세상적으로 자기 것만 챙기는 사람도, 때론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도 다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편성과 순도는 서로 반대쪽을 지향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같은 것이다. 즉 모든 사람의 공통분모인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그 안에 풍성하면 할수록 그 신앙 고백 안에서 육신으로 사는 모양이나 그 신앙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도 다 수용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보편성과 순도의 상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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