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과 고모라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5. 11. 13. 09:32 Writer : 김홍덕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로 떠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숨길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보러 간다고 하셨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의인과 악인을 함께 죽이는 것이 합장치 않다면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말 것을 구하면서 의인의 수가 몇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인가를 계속 묻는다. 그 결과 10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아브라함은 돌아간다.


날이 저물어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렀을 때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마침 그것을 성문에서 발견하고는 자기 집으로 청하였는데 이것을 본 소돔 백성들이 롯의 집에 찾아와서 롯의 집에 온 사자들을 내어 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을 상관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알아야겠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상세히는 그들을 강간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롯은 그들을 만류하면서 자신에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딸이 있어 그들을 내어줄테니 그리하지 말라고 해도 그들의 요구는 거두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상관하려고 하는 이유는 롯의 집에 방문한 하나님의 사자가 자신들의 법관이 되려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쳐도 자신들의 법관이 되려 하는 이들이 맘에 들지 않으면 죽이든지 할 것이지, 그들을 강간하려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의 사자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요구했던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그 이름의 뜻은 분명치 않다. 다만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강간하겠다는 소돔 사람들의 행태를 보고 소돔과 고모라가 성적으로 매우 타락한 도시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육신의 성에 관한 타락을 이유로 심판하셨다면 지금도 뭐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지금은 소돔과 고모라에는 없던 의인들이 있어서 망하지 않는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망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있는 것 중에서 망해야 하고 심판하시겠다고 하는 것은 에덴동산에 거했던 아담을 만드셨을 때에 사람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들자 말자 바로 유황불로 심판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보여준 일은 하나님께서 원래 사람에게 주신 것이 아닌 것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육신의 성욕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이것은 육신의 성에 대하여 마구잡이로 성욕을 발산하고 누리는 것이나 동성애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의에 관한 것이다. 사람이 가져야할 하나님의 의가 아닌 다른 의가 사람 안에 있기 때문에 멸망한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다른 의가 있기 때문에 육신의 성이 타락하고 문란해지는 것이다. 사람은 그 안에 있는 것이 몸으로 표현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라는 것은 블로그 <내용과 형식>에서 다루었듯이 남자가 내용이고 여자는 형식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남녀가 결혼하여 아이들 낳으면 그 아이의 성이 남자의 성을 따르는 것이다. 아이는 남자의 의(가문의 번성이라는 의)가 몸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결혼하면 여자의 성도 바뀌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남자는 의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의는 곧 법이고 모든 형식의 근원이다. 모든 표현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의가 민주주의기 때문에 그 나라의 모든 법과 삶의 방식과 모양이 민주적인 것이 그것이다. 의는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의가 주인이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의와 뜻과 계획이 표현된 것이 세상이고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딸이라고도 하고, 예수님은 신랑이요 교회와 우리 사람은 신부가 되는 것이다.


소돔의 사람들은 롯을 찾아온 하나님의 사자들이 자신들의 법 집행관이 되려 한다고 그들을 상관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다스리려 하는 것을 상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상관이란 성적인 관계를 말하는데 육신으로 보면 동성강간에 해당하지만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남자에게 자신의 의를 관철시키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자에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한마디로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말씀을 성경을 육신으로 지키면 영혼의 정체성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시각으로 보면 단순하게 성적으로 타락한 성읍을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시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안목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지금도 계속적으로 망하는 성읍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시각으로 성경을 본다면 십자가에 직접 못 박혀야 십자가를 지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소돔과 고모라가 성적으로 심각하게 타락한 성읍은 맞다. 하지만 성경은 육신의 문제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사람의 육신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한 형식이고 도구이다. 즉 의를 표현하는 것이지 이 육신이 본질이 아니다. 그러므로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가치관이 몸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가 왔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자신들을 다스리는 것을 용납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상관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 소돔과 고모라에 온 하나님의 사자들은 사람의 모습으로 와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어 하나님과 하나 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성품을 나타낸다고 하면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아닌 목사가, 그리고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의한) 거룩한 성자가 왔을 때는 용납하지만 그냥 이웃과 같은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는 오히려 자신들의 의를 그들에게 주장하려 하는 것이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자에게 상관하려 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모습과도 같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와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유대인들은 ‘그 몰골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잡아서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엄청난 권력과 화려함으로 교황이 와서 뭐라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사는 지역의 천하고 가난한 동네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이라고 하면 ‘웃기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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