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의 종말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5. 11. 16. 16:36 Writer : 김홍덕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자리에서 구원을 받았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것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롯은 여기서 그 여정이 끝난다. 그리고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두 이방족속의 조상이 된다. 그리고 그 아내는 소돔에서 떠날 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어버렸다.


소금은 기둥이 되거나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어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소금은 녹아서 없어질 때 존재하는 목적이 이루어지는 물질이다.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것은 사뭇 의미가 있다.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위대함을 좇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나섰지만, 결국은 애굽과 같아 보이는 땅을 선택한 사람이다. 그것은 그 의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의 본성과 생명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그의 아내는 소금기동이 되었다. 소금은 녹아서 없어질 때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냥 기둥이 된 것이다. 롯이 세상을 본질로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의를 표현해 낼 아내 역시 소금의 존재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기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즉 이 사건은 의가 없는 형식의 종말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존재의 목적이 생명이 되어 사람 안에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의 삶이라는 형식은 소금기둥과 같이 아무 의미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소금은 정말로 귀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둥으로나 자기 모양을 유지하고 있을 때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롯이 가진 의는 목적이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의를 표현하는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애굽을 좋아하는 심령이라는 것은 결국 존재의 본질이 아닌 존재의 형식만 남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귀해 보이지만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존재의 목적을 상실한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애굽을 좋아하고 세상을 본질로 아는 의의 종말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소금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짠 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셨다. 소금은 녹아서 형체가 없어지면서 짠 맛을 내는 것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신앙이 그렇다. 하나님의 의와 말씀은 소금기둥과 같이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금물 안의 소금과 같은 것이다. 사람 안에 하나님의 의와 말씀이 있으면 겉으로 보기에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 안에 하나님의 의가 생명이 되어 있어, 그 생명이 삶(맛)으로 표현되는 것이 사람(소금)의 존재 목적인 것이다.


그런데 롯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알고 애굽과 같은 땅 소돔과 고모라로 갔다. 롯 안에 있는 의와 생명이 그것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아는 것이 그의 생명이고 본성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를 소돔으로 가게 했고, 그 의가 표현되는 아내는 소금기둥이 된 것이다.


그리고 롯에게는 아들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다. 그것은 그 생명은 의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형식인 여자만 낳은 것이다.(이것은 육신으로 여자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롯이 가진 의와 생명은 대를 이어갈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딸들은 하나님과 생각이 달랐다. 그들은 육신으로 아들을 얻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아는 롯의 딸이 아닌가?


그들은 아버지의 씨를 훔쳐서 아들을 낳았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근친상간의 일이니 지금 시대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겠지만, 하나님의 의와 무관하게 하나님을 믿는 모든 신앙은 다 롯의 두 딸이 아버지를 취하게 하여 동침하여 얻은 아들과 같은 신앙이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님은 존재의 하나님이시니 사람에게 원하시는 의는 하나님 앞에 사람이 누구인가? 어떤 관계인가? 어떤 생명인가 하는 것으로 아들을 얻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사람(여자, 딸)의 의지대로 하나님을 육신의 문제를 다른 신들보다 더 잘 해결해 주시는 신으로 믿어서 그 성과(아들)를 얻는 모든 신앙의 결과(사람들은 이것을 영광이라 오판하기도 한다.)들은 전부 모압과 암몬과 같이 딸이 자기의 의지대로 아버지의 씨(이름)를 훔쳐서 낳은 아들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해서 신학교 간 것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들은 다 롯의 딸들의 일과 같은 것이다. 자기 공로와 의지로 신앙을 학문으로 만든 곳에 들어간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고, 그 결과를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의 씨를 훔쳐서 아들을 낳은 딸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신앙 안에 깊이 뿌리박힌 신앙의 타락이다. 즉 소돔과 고모라의 일이 신앙 안에 너무나 많은 것이다.


그렇게 롯이 종말을 맞이했다. 이는 롯이 죽었다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으로 표현된 신앙의 여정에서 아브라함과 친족인 롯의 신앙이 망한 것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서 롯과 같은 본성이 처리되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나올 때 함께 나왔던 롯은 아브라함의 친족이다. 그것은 아브라함 안에 롯과 같은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신앙인, 오늘을 사는 신앙인에게도 그런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삭이라는 약속받은 아들을 얻는다는 것(얻기 전에) 그런 신앙의 본성은 심판을 받아서 제거된다는 것을 롯의 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소금기둥과 같이 의의 모양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멸망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소금이 녹지 않고 기둥이 된 것과 같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목적이 사람 안에서 녹아서 생명이 되지 않고, 성경을 행동으로 지켜내는 신앙이 되었다는 것이 바로 심판 받아 멸망하는 신앙이라는 것을 말씀하심이고,


롯의 두 딸이 보여준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아닌 자기의 유익, 그러니까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세상을 편하게, 다른 사람보다 나은 삶을 살려고 하는 모든 것은 다 롯의 두 딸이 아버지의 씨를 훔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훔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결과와 영광이라 칭하는 모든 것은 다, 이방의 조상이요 이방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롯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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