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 나타난 것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유명한 말씀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난해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이 말씀은 결국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의미인데, 그러면서 부연하기를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나타난 그 자체가 본질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즉 우리가 눈으로 보고, 또 세상으로 나타난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표현된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비롯되었다는 것은 생명으로 본다면 그 생명이 가진 유전정보가 형체를 가진 동물 혹은 식물로 표현되고, 또한 그 생명의 특성을 나타내며, 그 유전적인 본성에 따라 행동하거나 모습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동물이나 식물의 본질은 보이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보이도록, 또 그렇게 행동하도록 하는 유전자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실재로 이제는 많은 부분에서 생물의 유전정보를 활용하고 있다. 드라마를 통해서 많이 접하듯이 과학 수사와 같은 것에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그렇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유전자는 절대적인 배타성, 즉 유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세상에는 같은 유전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한 생명의 개체 자체로도 그렇고, 또한 종(種)으로도 그렇다는 것이다. 바로 그 유일한 유전자가 표현됨으로 우리가 보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렇다는 것은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이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영이신 본성과 품성과 의를 세상으로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게 하신 하나님의 법으로 만들어진 세상이기 때문에 그 세상 역시 어떤 보이지 않는 것이 나타나는 법(法) 아래 있고, 그것을 생물에 관해서 이제 사람들이 유전자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 것이다. 즉 이 세상은 어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타난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생명으로 치면 DNA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 마네킹이나 박제처럼 껍데기나 형체가 그 생명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외형이 같다고, 외형을 만든다고 그 생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유전자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처럼 이 세상도 눈에 보이게 나타난 것이 본질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 표현된 근본이자 본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심



그와 같은 법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고, 또한 사람을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창세기에서는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고 하셨다. 즉 하나님이 보실 때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는 영을 불어 넣으셨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숨, 하나님의 영을 내용으로 하는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첫 번째 아담이고, 그 아담을 하나님께서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신 것이다. 즉 사람이 하나님을 내용으로 할 때 하나님께서 만족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사람에게 만족하시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셨는데 그 아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이를 두 번째 아담(두 번째 사람, 고전 15장)이라고도 하셨는데, 그 예수님에 대하여 표현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라고 하셨다. 그 표현이나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하신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같은 것이다. 즉 사람의 내용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의 표현이 있다. 먼저는 로고스(LOGOS) 그리고 뤠마(Rhema) 그리고 케리그마(Kerygma)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의 상태라고 할까 그렇게 구분이 되는 것이다. 먼저 로고스는 ‘하나님의 의도하심’, ‘계획’, ‘뜻’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표현되지 않고 하나남 안에, 하나님 자체로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뤠마는 로고스가 표현된 것으로 바로 사람으로 나타난 것을 말하는 것이며, 케리그마는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곧 사람이 전하는 말씀을 의미한다.



 로고스(LOGOS)

 하나님의 의도하심’, ‘계획’, ‘뜻’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 안에 있는 것

 뤠마(Rhema)

 로고스가 표현된 것으로 바로 사람으로 나타난 것을 말하는 것

 케리그마(Kerygma)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곧 사람이 전하는 말씀 / 사람으로 표현된 말씀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 바로 뤠마를 말하며,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사람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을 ‘뤠마’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첫 번째 아담에게 생기 곧 하나님의 영을 불어 넣으셨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처음 만드시고 만족하셨던 그 모습의 본체이시고, 또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사람인 자신에게 원하시는 정체성을 회복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신 것이다.


즉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의와 뜻이 사람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내용이자 본질은 바로 <하나님의 의와 뜻과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하셨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회복하여 그리스도의 삶을 살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내용이 자기 삶이라는 육신을 가진 형식으로 표현해 내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이 바로 인생의 본질이고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신앙과 믿음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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