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4)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2. 3. 10:20 Writer : 김홍덕

사람이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사람이 자기의 주관을 가지고 어떤 것이 선한 것인지, 어떤 것이 악한 것인지에 대하여 판단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선악과에 대하여 블로그하는 서두에 제기한 선악과에 대한 의문 중에 "악과를 먹은 것도 아니고, 선도 같이 먹었는데 죄가 경감되지 않는가?"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것인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의 모든 갈등은 사람들 마다 자기가 생각하는 선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발생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마다 생각하는 선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선이라고 할 것인지에 대하여 일치된다면 세상은 평화롭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시끄럽게 하는 모든 주장과 사건의 뿌리는 다 "이것이 선이다", 혹은 "이렇게 되어야 선이다"라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들이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그것을 일으키는 범인의 마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선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적어도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 이익이 최소한 자기 이익에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이익을 취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악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 선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덧붙여 본다면, '내가 잘못했습니다'나 혹은 '내가 악한 사람입니다'라는 사람은 세상을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 즉 모든 갈등은 <"이것이 선한 것이다">라는 주장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뿌리에는 스스로 어떤 것이 선한지 악한지에 대하여 정의를 내리는 마음이 있었기에 어떤 것에 대하여 선하다고 정의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선악과는 원죄가 맞다. 신학자들은 어떤 관점에서 선악과 사건을 원죄로 다루는지는 잘 모르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또한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는 이유는 정말로 딱 한가지, 어떤 것이 선하고, 어떤 것이 악한지에 대하여 사람 스스로 판단하는 그 가치관 하나, 그것이 유일무이한 죄인 것이다. 


선악과에 대한 깨달음이 없다면, 그리고 내가 선악과를 먹은 것이라는 고백이 없다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선악과의 문제는 신앙의 전반에 있어 절대적인 명제이고, 이것에 대하여 명확한 깨달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는다는 것은 다 거짓말이 될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이 선악과의 문제가 자기 안에서 확실하게 깨달아지는 것이 없다면, 순종이 무엇인지도 할 수 없고, 노아의 방주에 왜 부정한 짐승이 탓는지도 알 수 없으며, 또한 교회가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알 수 없다. 즉 이 선악과의 문제는 신앙의 모든 명제와 게시에 대한 근간이라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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