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어떤 관점에서 보면 성경의 모든 말씀은 사람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보느냐? 아니면 사람 안에 있는 각 양의 본성들을 나누어서 보느냐 하는 문제로도 볼 수 있다. 이는 다르게 말해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온전한 존재로 볼 것인지, 아니면 부정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느냐? 아니면 절대로 그럴 수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이나 로마인들의 관점에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인간의 모습은 절대로 하나님의 아들이나 왕이 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과 십자가 밑에 있던 백부장, 그리고 이후의 많은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평범한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세상, 그러니까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는 선과 악은 단 하나 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관점에 합당한 것과 아닌 것 그것 뿐인 것이다. 즉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대로 사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 수 있느냐? 아니면 본연의 사람으로는 되지 않고, 사람의 추하고 악한 것을 종교적인 계율과 훈련으로 배제 시켜야만 살 수 있다는 그 두 가지 관점이 있고, 전자는 하나님 앞에서 선한 것이며, 후자는 악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 침상에 메고 온 중풍 병자를 고치실 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면서 고치심을 보고 그것을 참람하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생각을 "너희가 어찌하여 악한 생각을 하느냐?(마 9:4)"이라고 하셨는데, 사람이 사람의 죄를 사하는 것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악한 생각> 즉 악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사람의 죄는 하나님만 사할 수 있는데, 사람이 그것을 대신한다는 것은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생각은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가진 주제에 하나님을 대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생각이 바로 악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의 뿌리는 사람의 본성을 분리해서 보고 그 중 사람의 어떠한 요소는 절대로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는 존재로 사람을 자리 매긴다는 선악과에 근간을 둔 생각이 유대인의 생각이고 악한 생각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과 악을 판단한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게 하고, 그런 모든 생각은 악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선악과의 문제는 신앙의 근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셔서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의 형식으로 지으셨는데,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품을 표현하기 위하여 부여한 사람의 연약함을 추하고 악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의 잘못된 생각,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악한 것으로 보실 뿐 아니라,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목적을 상실한 죽음의 상태로 보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셔서 선악과를 먹고서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생각, 알지 못하고, 땅이 혼돈하며,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지 않은 세계를 하나님의 세계로, 또 그리스도의 정체성으로 살게 하는 생명이 있는 존재로 살 수 있도록 하신 것이 그리스도의 사역이고 성경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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