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19) - 구속의 법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2. 23. 13:40 Writer : 김홍덕

백부장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한 것은 참 의미가 있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많은 관점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했기 대문에 구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만, 그 메카니즘, 그러니까 그 구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이 전부이라 할 수 있다.(특히 이런 관점은 시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러니까 예수님 이후의 죄는 어떻게 사할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2,000여년 전에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보면 지구를 1/3이나 돌아가야 하는 거리에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서 한 죄인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데, 그 피가 오늘 나의 죄를 사하고 나를 구원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근거가, 예수님께서 실재로 그렇게 했다는 것 그것 하나 만으로 믿는다는 것은 깔끔한 이해는 아니다.


백부장은 정말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봤다. 사형 당하는 죄인, 벌거벗고 당시 최고 극형의 형틀에 못 박혀 죽어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봤다. 그 명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혀 있고, 불과 몇 일 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구하소서!" 환호하던 무리들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거기서 내려와 보라"는 조롱을 받고 있는 연약한 모습을 본 것이다. 바로 아담이 감추고 싶어서 가렸던 그 모습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들의 모습이더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법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방법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예수님의 모습을 보니,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또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고백하게 되는 그것이 바로 구속의 법인 것이다.


이 법은 시대와 방법에 무관한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서 듣고 보기만 하면 그것을 듣고 본 사람이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자기의 모습이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들로 삼은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사람 안에 자신도 그렇게 감추고 싶었던 인간의 연약하고 추한 모습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아들로 인정할 수 있는 정체성이라는 것에 감사하고 놀라워할 수 밖에 없는 그 법이 바로 구속과 십자가의 법인 것이다.


그 예수님을 상징하는 어린 양이 선악과를 먹고 스스로 부끄럽게 여긴 아담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하여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이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가 사람이 선악과를 먹고 스스로 선과 악을 알게 되어 규정하게 됨으로 인간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끄러워 하고 그것을 감추려 한 것을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자격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려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구속이고, 우리가 선악과를 먹은 죄를 벗는 법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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