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6)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 제자들과 성도들 이십 명이 모여서 가룟 유다를 대신해서 맛디아를 제자로 선출했다. 그러나 맛디아에 관해서 알려진 바가 많지는 않다. 다만 가룟 유다를 대신할 제자의 자격은 세례를 받던 날부터 함께 했던 사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사람이라고 했으니, 맛디아는 이를 충족하는 사람인 건 분명하다. 그러므로 맛디아의 선출을 12명이라는 제자의 수를 충족하기 일로 볼 게 아니다. 맛디아가 갖춘 자격이 중요하다. 그건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이다. 맛디아의 선출은 예수님의 제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맛디아의 충원은 예수님 제자의 자격을 완성하는 것

 

열두 제자는 12라는 숫자의 의미보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집합의 대표성이고 제자는 어떤 사람인지를 대표한다. 가룟 유다가 맛디아로 교체되는 건 12라는 숫자를 채우는 게 아니라 제자라는 정체성을 온전케 한다. 따라서 맛디아의 충원은 예수님 제자는 어떤 사람인지 자격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어서 성령강림이 있었다. 성령은 제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임하신다는 걸 보여준다.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맛디아는 가룟 유다를 대신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사람인 맛디아는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확정한 가룟 유다를 대신한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걸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가룟 유다가 맛디아로 교체된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여기까지는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는 이야기다. 다만 이 시대 신앙인 대부분이 가룟 유다의 후손이라고 말한다면 이건 선뜻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확정하고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 버린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향유 옥합의 일이다. (이 향유 옥합의 일은 블로그에 자세히 설명한 글이 있다) 특히 가룟 유다가 예수님은 자기가 생각하는 그리스도라고 확정한 계기는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듣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종의 몸값인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버렸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그리스도가 아닌 램프의 요정 지니 같은 종(마법 같은 능력으로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종)으로 확정한 이유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준 때문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볼 때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확정했기에 예수님을 팔아버렸다. 가룟 유다는 육신을 가진 사람이 겪고 있는 가난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그리스도라고 생각했다. 그건 오늘날 기독교인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예수님께 늘 육신의 문제를 간구하는 것이다.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그리스도라는 생각을 버려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건 그리스도의 일이 아니라고 일갈했다. 자신이 그리스도로 이 땅에 왔다고 하신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건 그리스도는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건 글자만 읽을 수 있어도 알 수 있는 것인데 예수님을 믿는다며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여전히 육신의 문제를 기도한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가 맛디아로 교체된 것이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열한 명의 제자들도 겉으로는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부인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다. 열한 명의 제자들이 부인한 건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다른 제자들도 그리스도를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로 기대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왕이 되었을 때 높은 자리에 앉기를 욕심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꾸 십자가를 진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제자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있었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예수님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진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라고 믿은 11제자와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확신한 가룟 유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건 확실히 믿고 있었다. 그걸 믿었기에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십자가를 진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기본적인 자격은 충분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미 목욕한 자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그걸 믿지 않았다. 자기가 생각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준을 제일로 놓고 예수님을 심판했고, 그 결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확정했다. 그리스도가 아닌 예수님은 그에게 아무 쓸모가 없었다. 종의 값을 받고 팔아 버린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맛디아의 선출은 가룟 유다로 대표되는 그리스도에 관한 기준,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그리스도라는 기준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자격으로 바뀌는 전환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려면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살아나셨다는 걸 믿어야 한다. 자기도 인정하지 않는 걸 증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걸 믿는다는 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걸 믿는 것이다.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가룟 유다의 가치관이 십자가에서 죽임당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걸 믿는 믿음으로 바뀌어야 예수님의 제자라는 걸 맛디아의 충원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의 제자가 될 때 성령이 임한다.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가지도 않을 사람에게 성령이 임할 리는 없다. 성령이 임하신다는 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걸 깨닫는 것이고, 예수님이 그랬듯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잉태되고 거듭나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게 제자고, 그런 사람에게만 성령이 임하신다. 그리스도라는 정체성과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는지와 성령의 직임을 안다면 이건 너무 당연한 진리로 받을 것이다. 가룟 유다가 가진 가치관이 부활을 증거하는 맛디아로 교체한 일이 이것을 설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