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을 받고 싶었던 소년

Category : 김집사의 뜰/덕이의 신앙 이야기 Date : 2013. 8. 8. 17:35 Writer : 김홍덕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제가 어떻게 이러한 신앙관을 가지게 되었는지 기억을 되살려 이야기처럼 소개하려 합니다. 그냥 저의 생각만 올려도 되지만, '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는지' 조금이라도 소개해 간다면 이 블로그에 펼친 저의 신앙관과 신앙적 관점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의 이야기는 전혀 특별하지 않습니다. 60년대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그냥 보통 사람의 신앙 여정입니다. 저는 그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저 같은 사람, 또 거저 평범한 삶을 사는 모든 사람들, 그 누구라도 이러한 신앙적 관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978년 덕이의 초등학교 6학년 여름 방학은 교회의 <성경 하기 학교>와 함께 시작되었다. 당시 덕이의 부모님은 덕이의 증조모때 부터 다니던 교회를 떠나서 집 가까운 개척교회에 나가셨고, 덕이도 동생과 함께 그 개척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곳에는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도 있었다. 사실 부모님이 이전에 다니시던 교회는 초등학생인 덕이의 집에서 제법 먼 곳에 있었다.

 

그 개척교회는 이제 막 개척한 교회이기도 했고, 또한 7,80년대 한국교회는 부흥회라는 큰 흐름이 있었기에 그 교회도 일년에 몇 번씩 부흥회를 했다. 지금으로 치면 길 가의 점포 1층에 난방 같은 것은 없고, 그냥 장판만 깔고 20여평 되는 공간에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통성기도를 하는 것이 부흥회의 대표적인 모습이었다. 덕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부흥회에 자주 가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설교를 듣고는 같이 기도하기도 했지만, 어린 나이에 몇 십 분씩 기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눈을 뜨고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둘러보곤 했다.

 

사실 그 당시 중등교사였던 덕이의 아버지는 친척의 사업에 보증을 섰다가 큰 빚을 지고 있는 상태였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 당시 덕이가 살던 20평짜리 아파트는 500여만원이었는데 아버지가 갚아야 할 돈은 3,000만원이 넘는 돈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5,6층짜리 건물을 하나 살만한 돈이다. 그런 상황에 있었으니 덕이의 어머니는 부흥회에 가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 밖에는 대책이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덕이는 그때까지는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냥 엄마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일 년에 몇 번씩 하는 부흥회를 계속 따라 다니다가 보니, 사람들이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뭔지 몰랐지만, 자주 가다가 보니 점점 그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설교를 듣다보니 그것을 <방언>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이가 다니던 교회에는 덕이의 엄마와 친하게 지내는 여집사님의 딸을 비롯해서 학교에 등하교를 같이 하는 친구들을이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까지 작은 덩치의 덕이보다 더 커 보이는 그 아이도 늘 부흥회에 오곤 했다. 그 아이는 덕이가 사는 아파트 뒤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부친은 역시 교사였다. 덕이는 그 아이를 이성으로 까지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교회를 같이 다니는 이상 교회에서 하는 일은 더 잘 하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같이 노는 친구들 보다 더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덕이는 그 방언이라는 것을 자기도 할 수 있게 된다면 아이들이 자기를 우르러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덕이는 통성기도 할 때 같이 목이 쉬라고 기도하곤 했다. 하지만 그게 그런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치고는 힘에 부치게 기도하긴 했지만, 뭐 그게 될 일은 아니었다. 또 한 가지 덕이는 엄마를 따라 새벽기도회를 가기도 했다. 그 마음에는 그 개척교회의 초딩들 중에서는 예수를 가장 잘 믿는 아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간절한 엄마를 따라 이것저것 교회에서 인정받을 만한 것들을 그저 따라 했다.

 

나름 성과는 있었다. 어른들이 보기에 초등학교 6학년짜리가 교회의 모든 예배와 부흥회에 다 와서는 설교도 듣고 있고, 같이 통성기도도 하고, 끝나면 엄마와 같이 집에 가고,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청년부 형들과 복조리 돌리는 것도 따라 다니는 모습은 작은 개척 교회의 어른들에게 늘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고, 덕이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방언은 도무지 되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덕이는 부흥회에서 부흥강사가 교회의 작정 헌금을 받겠다고 하는 것을 듣고는 자기도 5,000원을 하겠다고 작정을 했다. 덕이의 부모님은 큰 빚을 지고 있어서 덕이는 용돈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그렇게 작정을 했다. 그 당시 탁구장에서 탁구 한 시간 치는데 300원을 주었다. 지금은 5~6,000원 정도다. 그 당시 초딩에게 5,000원은 개념도 없을 정도의 금액이었는데, 덜렁 작정해 놓고 헌금은 내지 못했다.

 

덕이는 방언도 받지 못했다. 교회에서 칭찬을 듣기는 했지만, 마음에는 작정한 헌금 5,000원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면서 또래들보다 교회 생활 잘 하는 아이라는 소리 듣고 싶어서, 방언을 받고 싶어서 열심을 내어 본 교회 생활이 신앙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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