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2:6-13) 거짓된 선지자들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8. 16. 07:54 Writer : 김홍덕

미가 선지자는 사람들이 평안히 가는 사람의 겉옷을 빼앗고, 즐거운 부녀를 내어 쫓고 하나님의 영광인 하나님의 의를 가진 거듭난 자들을 빼앗으면서도 어떤 사람이 와서 아무나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예언한다고 하면 쉽게 선지자로 받아들인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다시 모아 같이 풀을 뜯는 양 떼와 같게 하고 그 양 떼와 같은 사람들 앞에서 길을 여는 사람을 보낼 것이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보내서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는 사람들을 다시 돌이켜서 모으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서 사람을 구원하신 것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서 행하여 살지 않기 때문에 생긴 죄들이 너무 커서 그 많은 죄를 사하여 주어야 하는데 오고 가는 모든 인류의 죄를 모두 모아서 당신의 아들에게 죄를 씌워 벌을 받게 하여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자신들이 범한 죄, 곧 행위로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은 너무 보편적이어서 별다른 의심 없이 수용되고 있지만 이 보편적 생각은 의외로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시 행위로 죄를 범하는 것부터 논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행위로 지은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는 것은 성경을 행위 규범으로 보는 증거입니다. 신약과 구약, 율법과 복음의 구분도 행위로 죄를 짓는다는 것은 같은데 단지 용서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구분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가 어떤 것인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도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옳게 여기는지, 자신들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상실하였기에 그것을 보이시려 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와 뜻을 알지 못하는 중에 사람의 삶을 보면 그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악한 것으로 보이고, 예수님도 그것을 인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 같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든 죄들은 사람이 자기 자리를 떠났기에 생긴 일일 뿐인 것입니다. 즉 사람이 하나님이 정한 목적과 정체성의 자리를 떠났기에 우리가 흔히 죄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인류의 구원에 대한 모든 계획은 사람들의 행위로 인한 죄에 대한 사면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에게 있어 행위는 그 속에 있는 생각과 의에 종속된 것이기 때문에 사람 안에 있는 의로움만 고치시면 된다고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조성하거나 선택조차 하지 않은 자기 인생을 자기 주도적으로 살려고 하면서 그 안에서 의로움을 찾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자아를 확립하라고 하고, 젊은이들에게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합니다. 그 결과 어떤 이들은 나라가 건강을 위하여 금연하라고 하니 자기 몸을 해칠 권리도 자신에게 있다고까지 합니다. 


하지만 권리는 물건에 대한 권리는 그것에 대하여 값을 지불한 사람에게 있듯 그 권리의 주체를 자신이 조성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인생을 스스로 조성하거나 선택하지 않았는데 자기 인생에 대한 주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모든 범죄의 씨앗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옳다는 대로 주장합니다. 


그리고 또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보기에 그 세계 안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육신이 평안해지면 옳고 선하며 자기 주권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서 보니 모두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니 서로 옳고 그름이 충돌하는 문제가 생기고 그것을 조정하고 관리하며 서로 손해 보지 않고 조정하려고 역사 자체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 다 죄악인 것입니다. 설사 사람들이 서로 양보하려고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참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선하게 산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바로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한 주권을 스스로 가지려 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만들지 않았기에 권리가 없는 자기 인생을 자기 주권 하에 두려는 것은 자기 인생을 창조한 자리에 가겠다는 것이니, 그 인생을 조성하신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스스로 조성하지 않은 인생의 주권을 가진 양 생각하면서 ‘그러면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가?’ 스스로 구분하여 선한 것만 좇아서 자신이 휘두르는 주권이 옳다는 것을 보이려 하는 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와 하나님의 회복을 사람의 행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존재의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창조의 섭리까지 자기 안에 온전하게 자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이 생물학적인 창조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기 위한 존재로서 생물학적으로 창조되어 존재하게 된 사람이 하나님이 뜻하신 목적을 자기 삶의 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하나님 앞에 사람이 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미가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사마리아와 같이 간음하였다고 하는 것이 육신의 간음을 본질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한 사람의 존재 목적을 벗어나서 세상에서 자기 육신으로 보는 것들에서 자기 인생의 의미를 찾고서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여기는 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간음이라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육신의 삶을 본질로 보니,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것에 시비를 걸듯이 그것을 본질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의 행위를 문제시 삼기에 미가 선지자는 겉옷을 빼앗는다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행동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포도주), 어떻게 행하면 벌을 받는다(독주)고 말하는 이들을 선지자라 말한다는 것이라는 것도 교회의 강단에 서서 성경대로 <행동>하면 세상에서 성공하여 복을 받아 육신의 삶이 평안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아 사업이 망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을 주의 종이라, 목자라 칭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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