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8:1-14 실족케 하는 일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5. 6. 22. 15:18 Writer : 김홍덕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는 누가 큰지를 묻는 제자들에게 답변을 하시면서 어린아이와 같은 소자를 영접하는 것이 큰 자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실족케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을 하신다. 그렇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실족하게 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 소자를 영접하지 않는 것이 바로 실족케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린 아이와 같이 신앙이 어리고, 또 어떤 세계에 대하여 신입생처럼 배우는 이를 위하여 수고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더 알고 장성했다는 것을 빌미로 대접받으려는 모든 생각과 행위가 소자를 실족케 한다는 것이다.


실족한다는 것은 결국 목적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실족하게 하는 것은 어린 아이가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요, 신앙이 어린 사람이 장성한 사람이 되지 못하게 한다는 것, 그것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생명, 자신보다 의에 대하여 또 어떤 세계에 대하여 밝지 않은 자가 보고서 스스로 알게 되기까지 수고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그 세계에 대하여 더 크다는 것만 늘 보이려 가르치고 심판하고 징계하는 대접만 받은 사람은 결국은 그렇지 않은 천국의 법을 배우지 못하게 될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천국의 의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의 존재 목적에 이르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실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이것은 신앙에 있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교훈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실족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천국에서 진정한 의미의 큰 자로서의 모습으로 대할 것인지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많은 신앙인들, 특히 신앙에 대하여 어떤 직분을 가졌거나 영적인 능력이 있다거나 계시가 밝다는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어떤 사람의 신앙이 좋은 신앙인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실족하게 하는 사람인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교단에든 강도권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이 명문화되고 제도화 된 교단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아무나 설교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명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교회가 강도권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설교할 수 있는 자격, 심지어 강대상에 올라갈 수 있는 자격, 또 교회의 어떤 봉사를 위해서는 장립집사 이상이어야 한다는 식의 자격제한이 있다. 이런 모든 것은 다 천국의 법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특정한 사람만 한다는 것은 다르게 보면 그에 따른 특권이고 대접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은 일방적이라 자신이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계층만 그런 대접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어린 사람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이 어린 자들로부터 대접을 받겠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 누가 큰지를 묻는 의도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소자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업신여긴다는 것이 면상에서 무시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벽을 제도로 두는 것도 분명히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죄를 범하는 것이므로 그런 것은 다 빼어 버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빼 버린다는 것은 그 보이지 않는 제도로 받는 혜택 곧 대접을 다 버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버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그것을 고집하다 지옥에 가는 것 보다 나은 것이기 때문이다.


손이나 발이나 눈이 소자를 실족케 하는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신앙에 대하여 먼저 알고(눈 곧 안목), 또 더 드리고 수고할 능력(손과 발)이 있다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은 소자를 위하여 수고하는 능력이나 안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적선하듯 가르치고, 지위나 일에 차별을 두는 것과 같이 대접을 받는 것, 그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자를 실족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소자는 어린 아이 또 죄인과 세리와 같이 신앙적으로 도무지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또 제사장과 같이 하나님 앞에 입는 옷부터 다르게 차이가 있어 그들과 밥도 같이 먹을 수 없는 제도로서 업신여김을 받는 모든 사람들을 말씀하시기도 한 것이다. 오죽하면 예수님께서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하셨을까?


그런데 지금도 이것은 마찬 가지다. 옛날 박정희 대통령이 어릴 적에 고무신 신고 다니던 더러운 발로 교회 마루에 돌아다닌다고 꾸중을 듣고는 교회를 멀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그런 것이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거룩함이 그 거룩함의 기준으로 볼 때 거룩하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구별된 대접을 받는 것을 위함이라면 다 실족케 하는 것이고, 천국에서는 아주 작은 자이며, 누가 큰지를 따지는 세상의 가치관으로 신앙을 보는 사람일 뿐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실족케 하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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