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예수님은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사람이 극히 좋은 진주를 발견하면 자신이 가진 모든 진주를 다 팔아서 그것을 사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천국은 천국이 가진 의가 있다면 모든 것을 다 투자하여 천국이 가진 의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면 하나님께서 가지신 모든 것을 다 투자해서 그것을 얻는다는 말씀이다.


이는 실제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가지신 사람의 존재 목적이 있는 사람을 얻기 위하여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이 이 말씀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런 분이시라면 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의 가치관 역시 그러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런 가치관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아마 그것은 <목적론>이 될 것이다. 즉 목적하는 바가 있으면 모든 것은 다 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고, 수렴한다는 것이다. 목적이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즉 진주 장사가 전 재산을 구하여 극히 좋은 진주를 얻는 것은 진주를 구하는 것이 진주 장사의 목적이고 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좋은 진주를 보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정리되고, 또 그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또 극히 좋은 진주를 얻기 위하여 그날까지 살았다는 의미인 것이다.


사람들은 왜 사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때로 주변에서 살아가는 목적이 분명한 사람들을 본다. 많은 경우 그 목적이 자식이거나 돈이나 명예와 같은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아들의 사법시험 합격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는데, 아들의 속옷까지 늘 다려서 정리해둔다. 또 국회의원이 한번 되겠다고 마음먹으면 재산을 탕진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런 것은 인생이 가져야할 올바른 목적인지는 둘째 치고 목적을 가진 삶이 어떤 모양인지를 설명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없다.


성경은 사람들이 목적 없이 사는 것을 <흑암이 혼돈하고>라 말씀하신다. 즉 인생들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어둡고 혼돈스러운 맹인과 같은 삶이라는 것이다.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면 컴맹이듯, 인생이 인생의 목적을 모르면 그게 맹인이고 그게 흑암 중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진주 장사가 진주 장사이기에 좋은 진주를 구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전 재산도 다 투자하듯, 인생은 하나님께서 지은 목적을 알면 그것에 인생을 올인 한다는 것이다.


진주 장사에게는 진주를 구하는 것, 좋은 진주를 구하는 것이 목적이듯,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를 바로 아는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하나님의 의를 아는 사람은 삶에 있어 하나님의 의가 진주 장사에게 있어 좋은 진주와 같은 것이기에, 그 삶도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곧 하나님의 의가 삶의 목적인 사람들이 모인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인 것이다.


사실 인생은 어떤 목적 아래 서면 삶이 가지런히 정돈되고 분명해진다. 성경에서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 라는 말씀이나 <먹든지 마시든지>와 같은 말씀들이 그것이다. 이는 먹을 때도 주를 위하여 먹는 것이 되도록 가려 먹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냥 먹고 마실 뿐인데 그 삶이 주를 위한 것이라서 그것이 다 주를 위한 것이 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즉 그 인생이 주를 위한 삶을 살고 있다면 먹든지 마시든지 다 주를 위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가려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하려 하면 그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먹는 순간 마시는 순간 다 그것을 생각하면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신약도 율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법을 알면 하나님의 의를 위한 생명은 마시는 것도 먹는 것도 다 주를 위한 것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이란, 또 그 천국에 합당한 사람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목적이 분명하여 좋은 진주를 만나면 그것을 얻기 위해 전 재산을 주고 그것을 구하는 진주 장사와 같이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그런 목적을 가진 사람이 속하고 백성이 되는 나라인 것이다. 진주 장사가 진주를 구하듯,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을 가진 삶을 사는 사람을 구하고, 또 그 목적이 진주 장사에게 있어 좋은 진주처럼 삶의 모든 목적이 하나님의 의, 또한 더 나은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이 천국을 얻고, 그 백성이 되는 것이다.


또한 좋은 진주를 구하는 진주 장사에게는 좋은 진주가 그의 천국이기에 그의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얻는 것과 같다고 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더 온전한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라면 자신이 그날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그것과 바꾸어 내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은 좋은 것을 보면 그것을 자기가 가진 것에 더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가치가 자신의 것을 다 팔아야 하는 것을 자신의 것을 다 팔지 않고서 하나 더 가지는 것으로 하려면 당연히 그것은 불법이 된다. 어떻게 100만원 가진 사람이 백만원짜리를 사는데 자신이 가진 백만원은 그냥 두고 그것을 얻겠는가? 그렇게 하려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빚이 곧 죄다.)


이러한 죄는 신앙인들에게 많이 볼 수 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변화산상의 베드로다. 예수님을 만났다면 예수님이면 족한 것이므로 그가 가진 그때까지의 모든 신앙, 곧 엘리야와 모세도 다 예수님을 얻는 것에 사용해야 하는데, 모세도, 엘리야도 다 함께 얻으려고 한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의 말을 들으라.>하신 것이 바로 진정한 좋은 진주 구하는 사람의 마음인 것이다.


신앙인, 아니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이다. 온전한 하나님의 의가 있는 사람을 또한 하나님께서 좋은 진주 구하는 사람과 같이 구하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사람이 좋은 진주를 만나면 자신이 가진 모든 재산을 팔아 그것을 사듯, 더 온전한 하나님의 의를 만나면 이때까지의 모든 신앙을 다 그것을 얻는 것에 사용해야 한다. 진주 장수의 재산에 의당 진주가 있지 않겠는가?


바울사도도 이에 관하여 모든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가 하나님의 아들이 나오는 것이라고 했는데, 신앙이라는 것이 더 온전한 의, "정말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발견하면 그 때까지의 모든 신앙을 그것을 얻는 것에 다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더 좋은 것을 발견하면 이때까지 하던 것에 자꾸 새것을 더하려고만 하는데, 그런 것은 천국에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구약의 모든 율법이, 또한 성경의 말씀을 율법과 같이 행위로 지켜내는 신앙이 그 모든 행위의 근원인 하나님의 생명, 곧 그런 모든 행위를 표현하는 근본인 하나님의 의를 가진 생명을 발견하면 그것을 다 버리고 가는 것이다. 그런데, 더 나은 신앙을 발견하고서 이때까지의 관습을 유지하려 하면 결국 롯의 아내와 같이 돌기둥이 되고 아간과 같이 되는 것이다.


천국은 온전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면 그때까지 자신이 귀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그것과 바꾸는 것이다. 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온전한 의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진주 장사에게 있어서 좋은 진주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 비유의 말씀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라도 더 온전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면 그 때까지 자신이 가진 모든 좋은 신앙과 또 삶의 모든 것을 그것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로 천국 백성의 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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