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31-58 천국은 마치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태복음 Date : 2015. 5. 31. 13:10 Writer : 김홍덕

마태복음 13장은 <비유장>이라고 한다. 한 장의 모든 말씀이 다 비유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면 13장은 비유장이라고 하기 보다는 천국에 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비유가 다 천국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천국이라고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는 나라를 말한다. 굳이 나라가 아니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다 있는 상황만 되어도 천국을 운운한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보면 죽어서 가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천국이나 극락이나 다 그런 개념이다. 그리고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이 땅에 살 동안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공적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 땅에 살 동안 쌓는 공적이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라고 생각하는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은 아니다. 아담이 만들어질 때 아담의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이라 할 수 있는 에덴, 곧 만족의 동산에 들어가는데 어떤 공적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기독교 신앙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알고 보면 세상에 기여하고 관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식하는 존재다. 사람의 과학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하지만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이용하여 이전에 없던 것을 만든다거나 그 인과관계를 밝히는 범주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돛단배 안에서 부채로 바름을 일으키는 것과 같아서, 사람이 스스로를 존재토록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사람도 창조가 되었든 진화가 되었든 이루어지거나 만들어졌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에 신앙의 근간이 있기도 하다. 신앙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믿음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팽배하지만, 사실 신앙은 인식이다. 인간이라는 삶이 정말로 100% 수동적으로 주어진 것인데, 그 주어진 것 안에서 어떤 것도 다 주어짐 안에 있는 것일 뿐, 창조나 기여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봤자, 세상을 만든 것은 아닐 뿐이다. 엔진 안에서 수많은 폭발이라는 변화가 일어나고 차가 달리고 기계가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창조가 아닌 것과 같다. 어차피 엔진이 스스로를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이라는 것도 결국은 인식이다. 월드컵 결승전에 오른 두 나라의 국민들에게 결승전 결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는 것처럼, 어떤 사람은 동일한 현상을 보고 천국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지옥이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국이라는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가 있다면 그것은 흔히 말하는 공적이 아니라,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어야 죽어서든 언제든 천국에 가는 것이다.


요즘은 구글어스나 각종 포털에서 지도 뿐 아니라 도로의 사진까지 다 보여주기 때문에 낯선 곳에 가기 전에 그 동네 사진이라도 보고 가면 도착 했을 때 '여기가 맞나?'하는 의심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 그런 것이 없을 때는 주소대로, 또 알려주는 대로 잘 도착해서도 가본 기억이 없다면, 도착한 곳이 그 장소가 맞는지 의심하기도 했다.


사람이 가보지 않은 곳은 잘 모른다. 천국도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와 자신이 알고 생각한 하나님의 나라가 다르면 대책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적으로 천국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시는데 열심히 공로를 쌓고 죽었는데 그게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건 다시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바로 인식하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땅에 살 동안, "이것이 바로 천국이구나!"하는 인식이 없다면 죽어서 어디에 데려다 놓은들 천국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어쩌면 그 황망함이 지옥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들은 천국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성경을 제대로 봤다면 이 땅에서 쌓은 업적으로 가는 나라는 아니라는 것이다. 죽은 거지 나사로가 거지 주제에 뭘 할 수 있었겠는가? 에덴동산에 하나님이 데려간 아담이 뭘 한 게 있어서 그 공로로 에덴동산에 들어갔단 말인가? 십일조? 그것도 천국에 상급을 외상처럼 적금 들어 놓겠다는 것은 아니다.


천국은 이 땅에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께서 다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시는 그 때를 한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것만이 예수님의 진정한 재림이라면 지금까지 열심히 하나님을 믿어온 사람들은 다 프롤로그에 불과하다. 그냥 서론을 위한 배경을 산 사람이라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육신으로 살 동안 예수님의 재림을 눈으로 보지 못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예수님 재림의 본질은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가 명확해지는 것 그것이다. 그것이 재림이다. 사람은 언제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 흙으로 만들어진 땅과 같은 존재이기에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심겨서 그것이 생명이 되는 것이 진정한 재림이다. 그러니까 사람의 심령 안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정체성, 사람의 정체성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이 밝아진 상태가 바로 진정한 재림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씨를 가지고 비유를 하신 것이다.


분명히 예수님은 씨를 뿌리는 이가 인자 곧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셨다. 즉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이 사람의 마음 안에 심겨서 그것이 싹이 나서 그 열매가 나오면 그것이 재림이고, 그 생명이 주는 안목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천국이 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한 알의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는 것이 그것이다. 후~ 불면 날아가 버리는 작은 겨자씨가 심겨서 큰 나무가 되는 것과 같이, 예수님의 삶이 내 안에 들어와서 큰 나무가 되는 과정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저 예수님의 삶을 보았을 뿐인데, 그 겨자씨만한 사건이 결국은 큰 나무와 같이 자신의 삶 전부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누룩의 비유도 비슷하다.


천국이든 어디든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그 나라에 합당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반대하면서 민주국가에 사는 것은 자신도 피곤하지만 기본적인 정체성이 간첩이다. 그것은 그 영토 안에 산다고 그 나라 백성이 아니다. 천국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사람이 아니라면 교회 아니라 그 어디에 있어도 그것은 천국은커녕 의가 달라서 삶이 가시방석 같은 지옥일 뿐이다. 그러니까 어디에 속했느냐가 쟁점이 아니라, 그 나라에 합당한 의를 가졌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나라다. 마태복음이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된 복음서라서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이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적고 대신에 천국이라는 표현이 많지만, 마가복음과 같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이것을 분명하게 하나님 나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아니라도 천국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임은 틀림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나라다. 하나님이 옳다고 하는 것만이 옳은 곳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준으로 천국을 정의한다. 세속적으로 본다면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을 마음껏 쓸 수 있으면 천국이다. 이성을 좋아하면 그 또한 그렇다. 종교인들에게는 이 땅에서 종교적 규례에 따른 공로가 그 기준이다. 그렇게 다 다르지만 하나 공통적인 것이 있다. 자기 눈에 보이는 실체의 객관적 상태가 어떻든 자기가 가진 기준에 부합하면 천국이라 여긴다는 것은 같다. 즉 그렇게 세속적이고, 또 종교적인 기준으로도 천국이란 다 인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기준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에 대한 기준이 아니면 제 아무리 큰 공로와 큰 업적을 이루고, 또 자기의 소망이 이루어져도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는 아닌 것이다. 자기가 주인인 나라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 안에 심겨서 그 생명이 자신의 삶을 주관하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다. 즉 씨가 육신이 되는 세계의 법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셨듯이. 또한 씨가 땅에 심기는 것은 땅의 선택이나 공로가 아니듯, 천국은 자신이 기여한 것으로 가는 나라가 아니다. 즉 종교적이든 도덕적이든 그 어떤 기준에 부합하는 공로가 있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돈은 말할 것도 없다. 즉 천국은 수동적인 삶에 순종하는 법에 기초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마음 안에 심겨서 그것이 큰 생명이 되어 그 사람의 삶을 주관하여, 그 생명이 천국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인식을 가지고 살던 사람들이 누리고 가는 나라이다. 즉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이 육신이 된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주관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가는 나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심겨져서 그 생명으로 세상을 보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세상이 힘들기 때문에 천국을 소망한다. 하지만 분명히 알 것은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예비고사로 사람을 이 땅에 살게 하신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표현한 세계이다. 이 세계가 하나님의 세계라고 인식되지 않는데, 어떻게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란 말인가?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파라다이스 같아 보이지 않는다고, 이 땅이 온전히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세계임에도 늘 세상은 잘못되었으니 고쳐 달라하고, 또한 자신의 삶 또한 하나님께서 씨를 심듯 말씀을 심어 하나님의 형상을 또 성품을 나타내려하심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주신 육신의 삶은 연약하다며 부끄럽게 여기고 뭔가 자꾸 하나님 주신 사람의 본질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그런 안목으로 보면 이 세상은 지옥과 같고, 어서 하루라도 빨리 여기를 떠나 그런 모든 곤고함이 없는 천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겨자씨가 심겨서 큰 나무가 되면 겨자에게는 세상이 바뀐다. 하지만 정확히는 땅이 바뀌는 것이다. 겨자씨로 인하여 자란 나무의 모든 성분은 거의 땅에서 온 것이다. 즉 땅이 변하여 생명이 된 것이다. 겨자씨 한 알로 인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나무가 아무리 땅의 기운을 많이 차지하고 있어도 씨의 이름을 딴 나무가 되지 땅이 되지는 않는다. 켈리포니아산 오렌지는 있지만, 어떤 과일이나 나무의 생명 자체에 그 땅의 이름을 붙이지는 않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달리 흙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다. 땅과 같이 그냥 생명도 없는 흙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사람 안에 심겨지면 그 말씀으로 인하여 사람이 바뀌는 것이다. 그렇게 바뀐 사람을 거듭난 생명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어떤 땅에 오렌지가 심겨서 열매가 되어도 오렌지라고 하듯이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도 그것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거듭난 생명이 되면 그 생명을 그리스도의 생명이라고 하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고 교리를 행동으로 지키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의가 본질이고 자신의 생명이 된 사람이다. 생명도 없는 흙이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보실 때 살아있는 생명이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의와 생명이 그 사람을 다스리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즉 천국의 백성이 된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이 알곡을 창고에 들이듯이 가는 나라가 천국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죽어라 공로를 세워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심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이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것으로 온전하게 보인다. 즉 그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다. 한국 사람이 외국에 간 것과 같은 것이다. 즉 한국 사람은 어디에 있어도 한국의 헌법이 가진 의를 자신의 의로 삼는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나 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의가 생명이 되어 사는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천국에 갈 방법이 없다. 아무리 "주여! 주여!" 외쳐도 여권이 없는 사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천국은 마치>라고 하시면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씨가 흙인 땅에 심겨서 그 씨로 인하여 흙이 생명이 되면 그 알곡이 창고에 들어가듯 천국에 들어가는 것, 이 법을 아는 것이 천국의 비밀이고, 이 법을 아는 것이 바로 비유를 아는 것이다. 이 법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이 씨가 열매가 되듯 육신이 되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고, 그렇게 하신 목적이 우리 인생들이 다 그러해야 하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면 천국의 비밀도,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왜 비유인지도 아는 것이다. 이게 아니면 천국은 알지도 들어가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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