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태복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최근 성경인 개역 개정판에는 세계가 아니라 계보라고 나오는데 이는 좀 못 마땅한 번역인듯 하다. 물론 영어로 genealogy라는 단어가 계보는 맞다. 근데 어떤 이유로 그렇게 번역을 했는지 모르지만 개역 한글에서 <세계>라고 번역한 것은 대단히 주목 받는 번역이라 여겨진다.


마태복음이 되었던 다른 성경이 되었던 그 첫절의 경우 대체로 저자가 기록하고자 하는 주제가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마가복음의 경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이렇게 시작하고, 요한복음의 경우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  등 그 시작은 어떤 면에서 보면 주제라고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마태복음은 마태라는 제자가 기록하였다. 마태는 세리였고, 세리는 그 당시 매국노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 마태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초대교회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하여 기록한 성경이 바로 마태복음이다. 그 마태가 기록하고 싶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은 행적 그 자체나 족보가 아니다. 특히 이 마태복음의 경우 주 독자층, 그러니까 마태가 염두에 둔 독자층은 유대인들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전반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이 복선처럼 깔려 있다. 나라, 즉 세계를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교회>라는 단어도 2회나 나온다. 즉 마태는 교회시대에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목적이 하나님의 세계요 나라인 <교회>에 대하여 기록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단순한 하나의 명제로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것이다”하려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되기까지 어떤 시작이 있었는가? 하는 것을 그 시작으로 기록했고, 그래서 시작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시작이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본다면, 1월 1일이 시작이다. 하지만 어떤 기준에서 보면 다른 경우가 많다. 회계년도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도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나라는 1월1일부터지만 미국의 경우는 10월 1일에 회계년도가 시작되고, 일본, 영국, 인도 등은 4월 1일에 회계년도가 시작된다. 이처럼 시작이라는 것이 꼭 객관적으로 통일된 것이 아니라, 형편에 따라 그 시작이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재수를 한 사람과 아닌 사람은 대학생활의 시작이 다르다. 누가 되었던, 대학에 입학해서 다니기 시작할 그때 비로서 그 세계에 대하여 시작이 있다는 것이다. 즉 시작은 어떤 세계가 시작이 되는 것을 시작이라고 한다. 대학에 입학하면 대학생활의 시작이 된다. 즉 대학이라는 세계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는 아브라함에서 시작된다고 기록했다. 이는 모든 유대인들이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은 외형 즉 형식에 관하여 그러하다. 즉 육신으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롬 2:28) 

라고 말했다.


유대인이라는 증거는 기본적으로 할례를 받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마태나 바울이 말하는 유대인은 이 유대인이 아니다. 이것은 표면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내면적인 유대인, 즉 형식이 아닌 내용과 본질이 유대인인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그런 관점에서 마태가 말하는 “아브라함”은 육신의 조상 아브라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어떤 세계가 있는데 그 시작이 있는 사람들의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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