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행사가 형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는 그저 알라딘의 램프 속 요정이거나 차비 대신 내주는 선량한 존재일 뿐이다. 그들이 누군가 물을 필요는 없다. 오늘날 기독교인이 바로 그들이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기독교인 당신도 그중 하나일지 모른다. 예수님을 죄가 있어 인생이 형통하지 못하고 벌을 받아야 할 처지에서 자신을 대신해 벌 받은 존재로, 그리스도는 육신의 삶에 마주한 난관을 해결해주는 메시아로 믿고 있다면 재론의 여지 없이 그들 중 하나다.

 

이건 너무나 많이 이야기해 왔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야기할 내용이다. 이 블로그의 독자가 어느 날 눈에 보이는 게 본질이 아님을 알고 예수님이 부르시는 (You)’라는 호칭을 인해 통곡하는 날이 온다면 왜 그렇게 많이 이야기했는지 이해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지금은 더 중요한 이야기 해 보려 한다. 그건 그리스도가 왜 십자가를 지는가에 관한 것이다. 아마 이건 앞으로 전개될 마가복음 후반부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죽은 사람도 살리는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진 이유는?

 

대부분은 죽은 자도 살리는 능력 가진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 지신 이유는 신념이라 여긴다. 인류를 구원하려는 사랑의 마음을 인한 신념, 그것이 그 엄청난 고통의 십자가를 지게 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은혜라 감동한다. 이게 틀리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답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 아들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 아들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이기 때문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내려오지 못한 이유를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졌기 때문이라는데 초점을 맞추어 곤고한 육신의 삶에 위로를 삼고, 이를 복음의 본질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잊으면 안 되는 게 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된 분이란 것이다. 십자가를 지실 때 이미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육신이기에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한 게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라서 못 내려오신 것이다.

 

십자가를 지기 전 이미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였다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진 이유를 아는 건 너무 중요하다. 이걸 모르고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질 수 없다. 당연히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신념으로 알기에 성경을 지키려 노력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은 십자가도 분명 신념으로 지려 한다. 예수님처럼 되려는, 말씀대로 행하려 귀도에서 십자가를 지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죽은 자를 살리는 하나님 아들인 죄 없는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내 삶의 근본과 본성이어야 한다. 예수님과 내가 같은 존재여야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질 수 있다. 예수님과 같은 본성 때문에 어쩔 수 없어 십자가를 지는 게 아니라면 모두 신념과 외식이다. 이건 신앙적 논쟁이 아니라 상식적 개념이다.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본성을 가졌기에 어쩔 수 없이 지는 게 십자가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그리스도로 거듭난다고 한다.

 

너무나 다행스러운 건 그리스도와 같은 본성을 가진 생명이 되는 게 우리의 존재 목적이란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게 바로 이 의미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 창조된 존재다. 따라서 이 존재가 아닌 상태가 바로 죄다. 죄가 자리를 벗어났다는 의미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존재 목적으로 돌아가는 게 회개고 회복이며 구원이다.

 

죽은 자도 살리는 하나님 아들 예수님께서 맥없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우리 구원과 믿음에 아주 중요한 사안이다. 이 이유를 신념으로 보는 사람은 신념에 바탕을 둔 신앙생활을 한다. 노력하고 육신으로 지켜내려 한다. 반면에 그리스도시기에 십자가를 진 것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스도로 거듭난다는 게 바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생명이 되는 것임을 안다. 이건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다는 건 생명이 바뀌는 것이다. 신념으로 살아가던 생명이 예수님을 이끈 생명으로 다시 나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생명으로 새로 나는 게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렇게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자기 안에 있다. 생명이 자라면서 알게 되고 그리스도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설사 도망치려 해도 어쩔 수 없음을 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 2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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