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에 순례의 길을 문이 아닌 담을 넘어 들어온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결국 그는 순례의 길을 완료하지 못한다. 올바르지 않은 출발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결과를 담보한다.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출발은 거듭남이다. 행동 아닌 생명이 바뀌는 것이 시작이다.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하는 이유다.

 

예수님께선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규례를 주장하나 실제로는 악용하는 자들이라 책망하셨다. 모세는 부모를 공경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죽이라고 했지만, 예수님께 시비 거는 자들은 마땅히 부모에게 드릴 것도 하나님께 드린 것(고르반)이란 핑계로 자기가 취한다고 책망하셨다.

 

놀랍게도 이 시대 신앙인들도 너무나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 부모님의 보살핌으로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하며 결혼까지 도움을 받으면서 단지 교회에 다니는 걸 반대한다는 이유로 모질게 굴고 심지어 집을 나가기도 한다. 부모를 공경하고 가까운 데서 멀리(유대에서 땅끝까지)까지 복음을 전하라 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멀리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부모와의 관계뿐만이 아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혼도 하지 말라며 세상 사람을 멀리하려 한다. 이런 모든 게 그나마 스스로 만든 규례마저 악용하는 일반적 모습이다.

 

사람이 이렇듯 그릇되게 행하는 건 출발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자신이 규례를 지켜야 할 존재로 거듭나지 않았는데 규례를 지키려 하니 여러 가지 무리가 따르고 이에 타협을 통해 또 다른 규례를 만든다. 돼지고기나 주일 성수처럼. 규례는 신념이나 노력이나 하나님을 위한 마음으로 지키는 게 아니라 그 규례가 본성인 생명이 되는 게 먼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하셨다. 장로의 유전이 자기 본성도 아닌데 행위로만 지키기 때문이다.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막 7:6-7)

 

그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 자들이라고 책망하신다. 육신의 평안과 복락을 얻을 목적으로 사람이 정한 규례를 지키느라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다는 말씀이다. 자기 육신의 복락을 위해 장로의 유전을 지키려고 영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사는 생명이 되기를 바라시는 뜻은 버린 것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로 거듭나길 바라신다. 이것이 사람을 향한 유일한 뜻이다.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건 모든 말씀, 모든 규례, 모든 절기를 지키는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이게 그리스도고,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게 우리의 존재 목적이고, 우리 삶의 시작이다. 그리스도 났을 때부터 인생이고 의미 있는 존재다. 그 전은 우리가 알다시피 생명 없는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어두운 존재다.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성경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

 

그러므로 사람이 종교적 규례를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건 자신이 그런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성경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건 사실 말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설교를 듣고, 어느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게 불문율이 되었다. 그러나 노력은 이르지 못한 자의 필요다.

 

예수님께선 비단 이 사례뿐 아니라 끊임없이 외식을 책망하셨다. 내용 없는 모든 종교적 신념과 노력과 경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이다. 머리카락 없는 사람에게 드라이기를 선물하는 것같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희롱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지탄받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존재가 성경에 부합하지 않는데 성경을 지킨다고 하면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을 받았다며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과 자신들을 경건한 자로 스스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노력하는 건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주일 성수, 십일조, 착한 말, 밥 퍼주는 봉사, 성가대나 교사를 하는 게 먼저가 아니다. 주일날 돈을 쓰지 않으려 노력하는 건 바보다.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자체로 이미 지출하고 있는 것인데 그걸로 성경을 지킬 순 없다. 

 

그리스도로 거듭나면 숨만 쉬어도 성경을 모두 지키는 사람이란 의미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존재가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다. 성경이 자기 육신이 되고, 자기 본능이 되었으며, 자기 생명 정체성이 말씀의 주체인 그리스도인데 성경을 지키려고 노력할 이유가 도무지 없다. 이게 거듭남이고 구원이고, 이것을 믿는 게 믿음이다. 그리스도로 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어떤 경건도 모두 외식이다. 예수님께서 책망하는 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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