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환난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견뎌야 할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를 알려 주신 것이다. 먼저 견뎌야 할 시간 동안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아주 유명한 말씀이지만 명확하게 무엇이 멸망의 가증한 것인지, 또 어떤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걸 두고 하신 말씀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 저렇다고 말은 하지만 대부분 주관적일 뿐 아니라 계속 언급하고 있는 눈에 보이는 걸 본질로 아는 관점에서 하는 말들뿐이다.

 

멸망과 가증스러운 것과 거룩함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의다. 육신의 성공을 저해하는 것이나, 세상의 보편적 기준에서 터부시하는 걸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그런 사람의 관점은 하나님의 의와 다르다. 이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다.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의와 그 의가 육신이 된 그리스도고, 멸망하는 가증스러운 건 그와 반대되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거룩한 그리스도라면, 멸망의 가증스러운 그리스도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란 의미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라 일컫는 교회에서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 이게 바로 멸망의 가증한 게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

 

그렇다면 누구나 멸망의 가증스러운 게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걸 보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신봉하고 신앙으로 믿고 있다.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란 곳에서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오늘날 교회 그 자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멸망의 가증스러운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이게 보이지 않는다면 이 일 이후에 오신다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도 선명해진다. “여기에 이 사람이 그리스도다!”, “저기에 저 사람이 그리스도다!”라는 소리가 들릴 것인데 믿지 말라고 하신 거짓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선명해진다는 말이다. 바로 십자가가 아닌 세상의 성공과 영광을 주는 그리스도다. 이런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지 않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건 네가 옳다라는 순종에서 시작하는 것인데,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건 너보다 내가 옳다라는 기반 위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걸 도와주신다는 그리스도는 모두 거짓 그리스도다. 십자가를 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교회들이 가르치고 믿는 그리스도는 모두 거짓 그리스도다. 말로는 십자가를 진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보다 더 희생하자고는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성공하게 하신다고 한다. 이런 속임수 속에 거짓 그리스도가 있다. 더 희생하고 더 봉사하면 복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외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며 외치고 있는 그 자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삼가 조심하라고 하셨다. 무엇보다 내가 이미 말했다고 하셨다. 가이드와 표준이 주어진 이상 여기서 벗어나면 다 범죄가 된다. 행하는 순간 심판이다. 그리스도를 믿어 세상에서 이긴 자가 되겠다고 하는 순간 심판을 받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나는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런 세상의 혼란이 구원의 시작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종말은 끝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정리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나려면 당연히 이런 거짓 그리스도를 청산해야 한다. 이런 그리스도를 하늘의 권능으로, 해와 달과 별로 여기는 믿음과 신앙이 끝나야 한다. 이런 종말 없이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는 없다. 새 술인데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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