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의 정당성을 시비 걸다가 제대로 되치기당한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나라의 세금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한다. 세금은 어디에 내느냐로 내는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가이사에게 낸다면 로마의 사람이고, 하나님께 낸다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하지만 육신의 세금이 하나님 나라에 속했다는 걸 증명할 방법은 사실 묘연하다.

 

바리새인들의 시비는 이런 점을 악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내면에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세금이 하나님 나라에 드리는 게 되도록 나라를 독립시킬 존재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이란 말씀으로 답하셨다. 솔로몬의 판결 같은 명쾌한 답변인데, 내면에는 '나는 나라를 독립시키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선언도 포함되어 있다. 향유 옥합 사건 현장에서 '가난한 자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우선 세금이 가진 성격과 관련하여 살펴보면 육신은 세상의 어떤 나라에 속해 있다. 그래서 싫든 좋든 세금을 낸다. 그리고 이렇게 내는 세금은 어떻게 봐도 하나님 나라에 내는 세금으로 보긴 힘들다. 그냥 육신이 속한 세상 나라에 내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교회라는 대체 기관을 이용한다. 여기에 내는 건 하나님께 내는 것이라고 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세상에 속했다면 제아무리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며 신권으로 바꾸어 교회에 드린다고 해도 세상에 내는 것이다. 자신은 교회에 내는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 같아도, 그 헌금으로 누리는 혜택이 세상에 있다면 그건 세상에 내는 세금일 뿐이다.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 믿는 세상의 성공과 복락, 세상에서 자녀의 풍요는 세상의 혜택이니 그는 세상에 세금을 내는 것일 뿐이다.

 

반대로 그리스로 거듭난 사람은 굳이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 세금을 충실히 내는 세금도 하나님께 내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난 사람은 세상이 옳다는 주장 앞에 자기 육신을 내어주는 존재기 때문이다. 세상이 세금을 내는 게 옳다고 주장하니 자기 육신의 수고가 집약된 돈을 세금으로 내는 건 그리스도라는 본성에 이끌리는 삶이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이 대답은 '나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선언이다. 이런 예수님의 입장은 일관된 것이다. 세상 임금이 되면 높은 자리를 얻으려는 제자들에게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나, 영생을 얻으려면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는 말씀이나, 무엇보다 가난한 자는 항상 있을 것이란 말씀처럼 한결같은 말씀이다. 그리스도는 세상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또 보여주신 그리스도는 당연히 하나님의 그리스도다. 그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졌다. 세상 권세를 가진 자들이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정죄했고, 세상 사람들은 자기 몸도 구하지 못하는 예수님을 향해 '그리스도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며 조롱했다. 예수님은 세상 가치관 앞에 자기 육신을 내어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세상을 구하겠다는 신념 때문이 아니다. 억지로 참고 노력한 게 아니라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세상 주장 앞에 자신을 내주는 본성을 가진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 그리스도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리스도다. 그러니까 육신의 나라가 독립하는 것이나 가난 해결을 위한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가치나 옳다는 주장 그리고 제도 앞에 자기 육신과 그 수고를 내어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주장에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내어주신 것이 그 증거다. 그리스도는 바로 그런 존재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스도로 난 사람은 모든 게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영광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는 일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셨고,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로 거듭나면 먹든지 마시든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그리스도,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세금을 어디 내든 하나님께 드리는 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의 삶은 육신의 평안, 자녀의 복락 같은 걸 기대하고 그리스로 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본성대로 살 뿐이다. 세상이 옳다는 주장 앞에 자신을 내어주는 본성대로 살 뿐이다.

 

따라서 예수님은 물론이고 예수님처럼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어디에 세금을 내든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에 세금을 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 삶이 세상의 주장 앞에 자기 육신을 내어주는 존재기 때문이다. 돈은 육신의 수고, 그것의 결정체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난 사람에게 세상의 일은 모두 그리스도라는 본성을 보여주고 그려내는 운동장이자 도화지다. 그런 그리스도로 난 사람에겐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으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도 하나님께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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