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3:18-25 아비와 자녀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골로새서 Date : 2015. 2. 13. 10:55 Writer : 김홍덕

부모에게 순종하라



성경에서는 부모와 자녀에 관한 이야기와 비유 그리고 말씀이 있다. 그 중의 핵심은 뭐라 해도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에 관한 말씀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을 보이심으로 그와 같은 육신과 인생을 가진 우리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법을 보이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을 여셨기 때문이다.


아들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육신으로 낳은 자녀를 말한다. 아들이라 해서 '딸은 자녀가 아니냐?' 하는 논쟁은 없는 것으로 하자. 그 이유는 지금 이것이 육신의 아들과 딸에 대한 정의와 차별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를 대표하여 아들이라 하고 아들이란 부모의 의와 뜻이 육신이 된 존재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 바로 성경을 볼 때 봐야 하는 행간이고 관점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몸속에 있다가 어머니에게서 난 사람을 말한다. 이는 아버지의 속에 있는 뜻이 아버지와 같은 이미지 곧 형상으로 성육신된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시는 법과 동일하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보이지 않는 분이시기에 그 뜻을 표현할 형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형상(이미지)>을 표현하신 것이다. 이것은 농사의 개념으로 보면 농부가 땅에 씨를 심는 것과 같고, 사람으로 보면 남편의 씨(아버지의 형상이요 이미지)가 아내의 몸속에서 아버지와 동일한 생명으로 성육신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흙으로 지어진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씨와 같이 들어와서 그것이 생명이 되는 세계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세계이다. 땅이 어떠해도 그 땅에 씨가 심기어져 열매가 나면 그 씨의 이름을 따고 그 씨의 열매가 된다. 그러니까 사과 씨를 심어서 사과가 열리면 그 나무의 모든 성분이 다 땅에 왔을지라도 그 나무는 땅의 이름을 따지 않고 사과나무와 사과가 되듯이,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져서 거듭난 생명이 나면 그 삶이 아무리 육신으로 살고 육신의 수고로 인하여도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삶이 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 심령에 받고 그 말씀이 속 심령 안에서 싹이 나고 열매가 열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무가 열매를 맺을 지경이 되어도 땅은 그대로 있지만 그 땅은 다른 땅이다. 사과가 열렸다면 사과 밭이나 그게 아니라도 흙이 사과나무가 되는 역사를 가지게 되는 것이듯,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잉태되고 자라면 그 사람이 여상하여도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사는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을 보고 또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는 생명의 역사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는 자녀의 근본이다. 이는 언뜻 보면 유교의 사상 같지만 그것은 오해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에 한정된 말씀이 아니다. 육신으로는 그 부모에게도 또 부모가 있고, 그 부모에게도 또 부모가 있기에 자신의 부모가 자신의 근본은 아니다. 물론 근본에 이어진 고리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타고 올라가면 결국은 하나님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본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것은 자신의 근본에게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존재하게 한 이유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과 의에 관하여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렇게 하나님이 자신의 정체성에 순종하는 사람, 순종하는 생명의 본성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육신이든 또 다른 일에라도 자신보다 근본과 의 앞에 순종하는 본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육신의 삶을 주신 부모에게 순종하고, 지식의 근본이 된 스승을 공경하는 것과 같은 것은 신념이나 각오가 아니라 하나님을 근본으로 인정하는 그 본성이 표현되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바로 생명의 법이다.


순종은 모든 믿음의 근본이다. 믿음이라는 것이 온전히 수동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존재 이유의 근원이신 온전한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그가 우리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가지거나 택한 사람이 없다. 한 마디로 자신의 발로 인생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유를 주신 이에게 순종한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에 순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온전히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어떤 것에 순종하려고 한다면 그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하고, 또한 그 존재와 자신과의 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천하의 모든 만물들을 얻기 위하여 마귀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경배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즉 사람이 자신이 순종해야 할 대상을 분명히 알아야 하나는 것이다.


사람이 순종해야할 것은 결국 자신의 운명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이 가진 운명의 하나이다. 이것에 순종하지 않을 사람이 없듯이 사람은 자신을 그런 운명에 두신 이를 찾고 그 분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운명과 목적을 부여하신 분이 바로 자신의 진정한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종을 아는 사람은 육신의 부모에게, 또한 어떤 의와 세계에 대하여 자신에게 목적과 그 의의 실체를 알게 하는 이에게 순종하게 되는 생명의 순리와 같은 것이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바울 사도는 디모데를 아들이라 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들이 있을 리가 없는데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바울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의가 디모데를 통하여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같은 법이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도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에 또한 자신도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된 사람인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한 것이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거듭나게 되었다면 예수님이 아버지가 되니,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사람은 관계가 좀 이상하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성경을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다 문자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어머니 하나님' 같은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장자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또한 사람과 같은 육신을 가진 존재로 오셔서 사람들에게 보이신 분이시다. 사람이 어떤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되는 관계가 되었다면 그 두 사람 사이에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법이 있는 관계가 되는데 이러한 것을 두고 바울 사도는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나 디모데나 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들이요 또한 서로 형제이고, 또한 서로 안에는 하나님의 아들 되는 법이 전해진 낳아지는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정의 관계에 있어 낳았다고 하고 또 아들이라 하는 것이지 그것이 정말로 영적인 자신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아들이란 자신의 생각과 의가 성육신된 존재를 말한다. 그러한 존재가 화가 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아내를 괴롭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괴롭게 하는 것은 의를 안다고 하면서 알지 못한다고 나무라고 심판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녀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힘들고 화나고 곤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미운 오래새끼라는 동화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육신으로 자녀를 낳았는데 그 존재의 정체성을 알려주지 못한다면 이 보다 더 낙심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으로 아비라는 것으로 족하지 않고 자녀에게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의 의안에서 온전히 알려주지 못하는 아비가 되지 말라는 것이 바로 자녀를 화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인 것이다.


많은 교역자들이 성경에 대하여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에게 결국은 하는 말 중에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믿음' 이라며 돌려보내는 것이다. 지금 의문이 있어 답을 얻고자 왔는데 보지 않고 믿어야 한다고 돌려보내면 그 사람이 돌아가서 과연 평안하겠는가? 그럴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아비가 되지 말라는 말씀을 바울 사도가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과 아비와 자녀의 관계가 되는 그 법을 설명하기 위하여 육신으로도 부모와 자녀라는 법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육신으로 아비와 자녀라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표현된 또 하나의 형식인 것이다. 그런데 육신으로 아비가 자녀에게 인생의 목적을 알려주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자녀를 낙심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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